본문 바로가기

책읽기-영화보기

호모바이크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 홍은택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자전거로 10여킬로 되는 학교를 통학했었다.
그때 만들어진 체력이 삶에서 힘든 국면들을 버텨내는 힘이란걸 안다.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당시의 자전거 타기가 나에게 큰 힘이 되고있음을 50가까운 나이에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몇년전에 김훈의 자전거 여행기를 읽고 글이란게 이렇게 아름다울수도 있구나!라고 감탄했었다.
실제 김훈의 자전거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치가 내 가슴으로 들어와서 내 밖으로 빠져나가는 ---'  어쩌고하는 표현들은 어찌나 생생한지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막히고, 내리막길에서는 숨이 트였다.
실제 그의 자전거 굴림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아름다운 경치들에 가슴이 탁탁 막혔었다.

그러다가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이란 책을 읽었다.
원래는 한겨레 신문 목요일판에 붙어 나오는 '책 섹션'란에 연재되는 여행기였다.
그걸 거의 빠짐 없이 재미있게 읽었었다.
나중에 그걸 묶어서 책으로 낸건데, 내용이 신문에 연재되던것 보다 풍성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김훈의 책보다 훨씬 중량감이 있었다.

김훈의 여행기는 경치에 빠져 있다.
홍은택은 경치속에 거의 모든 인문학을 포섭하고 있다.
자전거가 굴러가는 바뀌의 갈피마다에 자신의 삶을 녹여 놓았다.
인간과 삶과 역사와 혁명이 함께 자전거와 굴러 다니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은택이 그 책에서 자전거 타는 행위가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동차로 구성된 일상이 자본주의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행위자체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대한 전복이란거다.
비슷한 주장을 그 후에도 어디선가 프레이리란 사람의 발언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라는 책으로 80년대에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80년대 노동야학을 하던 사람들이 읽었던 경전 비슷한 책이다.
나중에 이 사람이 브라질인가 칠레 좌파정부의 교육부장관 비슷한 직함도 가졌던 것으로 안다.

프레이리도 자동차를 버려야 대안적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동차의 대안으로 자전거를 주장한다.

이런 발언들과 어렸을적 기억이 결합해서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항상있었다.

그런 계기들이 쌓여서 자전거 여행을 시도했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제일크게 달라진건 좀더 좋은 자전거에 대한 열망이었다.

돈이 좀 모여지자 여기저기 매장을 다녀 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이 과정에서 자전거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자전거가 또 하나의 웰빙 라이프 스타일로 폭 넓게 소비되는걸 발견했다.
대안적 삶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부유함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자본주의란 일탈을 쫒아가서 그걸 자본의 영토로 재빨리 재영토화 한다는걸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내 자전거 타기도 결국 그런 새로운 자본주의적 포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동차를 버리지도 못했고, 80만원에 가까운 내 나름의 거금을 들여서 자전거를 구입했다.

그렇다고 내 자전거 타기를 새로운 대안적 삶의 양식에 대한 시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날씨가 풀리면서 집에서 학교까지 10여 킬로를 일주일에 두세번 자전거를 끌고 다닌다.

매일 자동차를 몰고 다닐때 보다, 확실히 돈이 좀 절약된다.
자동차를 가지고 다닐때는 술먹으면 택시를 타야한다.
그런 택시비가 만만치 않았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니 술먹어도 따로 택시비가 들지 않는다.
자동차로 들어가는 연료비도 확실히 절약된다.
일주일에 한번씩 연료비가 5만원 정도 들었었다.
자전거 이후로 2주에 그만큼씩 드는것 같다.

홍은택은 인간이 발명한 기술 중 자전거가 제일 휼륭하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새로 구입한 자전거를 타보니 그걸 알 것 같다.
옛날에 타던 자전거에 들어가는 1/3 정도의 힘으로 편하게 자전거를 굴려 여기저기 돌아 다닌다.
더 나이 먹어서도 자전거를 탈 수 있을것 같다.

자전거에 좀더 좋은 기술이 채택되고, 자체의 무게가 좀더 가벼워 지고, 안전관련 기술이 좀더 발전한다면 자동차를 대체할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100% 자동차를 대체하는건 불가능할거다.
그렇더라도 상황이 좀더 개선된다면, 자동차의 반이상은 수월하게 대체할 수 있을것 같다.

자동차를 반만 대체할 수 있다면, 그건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나타날거다.
사람들 사이의 만남도, 조직의 형태도, 사고 방식도, 도로 환경도 모든게 변하지 않을 수 없을거다.

그렇게 된다면 지구상에 호모바이크스라는 새로운 종이 탄생할 것 같다.
호모바이크는 호모사피엔스의 새로운 진화종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홍은택의 자전거 혁명론을 지지한다.
홍은택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을까?

웰빙으로라도 자전거가 좀더 많이 소비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