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국가와 일치될 때만, 자신이 국가일 때만 승리한다. Fernand Braudel.
사람들은 학살을 하면서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Tacitus.
1부 1장. 세계질서
법리적 관점에서 제국은 경찰이다.
전지구에 걸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경찰력으로서 개입한다.
UN은 단일한 주권국가들의 국제적 관계에서 제국으로 이행하는 중간 매개물이다.
UN이 단일한 주권국가들간의 계약에 의한 무정부상태의 혼란 극복이라는 근대적 국가성립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조직 운영규정을 가진것은 제국으로의 이행 매개물이라는 걸 반증한다.
제국은 '정의로운 전쟁: just war'이라는 개념을 따라구성된다.
제국의 구성에 있어서 제국 보다는 갈등이 선행적이다.
갈등과 분쟁이 출현하고 그걸 조정하고 관리해야할 명분을 따라서 제국이 구성된다.
이런 제국의 갈등관리 역할은 제국에게 예외성을 부과한다.
제국의 성격은 제국이 가지는 예외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국의 예외성은 분쟁과 갈등에 대한 개입권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2장. 생체정치적 생산
제국 이전 시기, 근대사회는 훈육사회다.
훈육사회는 개별적 인간이라는 주체들에 대한 관리가 신체의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관리기관들이 선명하게 구획되어 제도화되어 있다.
학교, 군대, 병원, 교회, 감옥, 공장 등과 같은 선명한 제도적 기관들이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삶을 훈육한다.
근대의 주체성은 제도의 외부적 감시와 관리에 포획되어 있다.
주체와 관리감독기구가 분리되어 있어서 주체들이 감각하는 외부적 훈육압력이 명시적이다.
주체들은 때때로 외부적 훈육압력에 저항한다.
제국시기, 탈근대사회는 통제사회다.
훈육사회에 비해서 통제사회는 제국의 주체에 대한 관리가 신체에 직접새겨진다.
제국과 주체가 통일되어 있다.
제국이 요구하는 삶의 양식을 내면의 욕구로 설치한다.
신체에 직접 제국이 그려진다.
근대사회의 제도들은 분명하게 구획선이 그려져 있다.
경계선에 따라 각자의 고유한 영토를 가진다.
이에 비해서 탈근대사회의 제도들은 구분 구획선이 무너진다.
학교-병원-감옥-군대-교회 등의 제도들이 혼종적으로 서로를 가로지른다.
근대적 시각으로 보면 제도들이 붕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유연하게 제국적 삶의 양식을 개인들의 신체에 직접 도안한다.
cf) 근대적 군인은 일정한 훈육의 과정을 통해서 전투를 수행한다.
전투에서는 군대제도라는 외부의 훈육제도가 입력한 행위양식을 재현한다.
전투도 명시적이고, 직접적이다.
이에 비해서 탈근대의 전투는 비가시적이 된다.
모니터에 결과가 산출되는 전투를 수행한다.
군인이 생산되는 과정도 제도의 직접적 훈육과정에 덜 의존한다.
비가시적 전투양식을 컴퓨터게임 등을 통해서 이미 내면화하고 있다.
제국적 군인으로서 행동양식을 제도의 훈육에 선행해서 신체에 직접 획득하고 있다.
cf)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은 제국이 부과한 자본주의의 생활양식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다.
탈근대사회에서 청소년은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포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품의 직접 소비자로 위치한다.
그래서 자본에 대한 욕망이 훨씬 강력하다.
자본이라는 형태로 제국이 부과한 생활양식을 신체에 강렬하게 내면화하고 있다.
cf) 이명박이 공공영역을 사유화할려는 시도는 제국의 욕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정책일까?
제국의 관점에서는 공공의 것을 해체해서 사유화하는게 본성에 맞다.
탈주 영역들을 재영토화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서울 강남은 미국이고, 대한민국 1%는 제국의 신민인가?
cf) 대항제국에 대한 구상이 점점더 궁금해진다.
너무 성급한가?
사람들은 학살을 하면서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Tacitus.
1부 1장. 세계질서
법리적 관점에서 제국은 경찰이다.
전지구에 걸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경찰력으로서 개입한다.
UN은 단일한 주권국가들의 국제적 관계에서 제국으로 이행하는 중간 매개물이다.
UN이 단일한 주권국가들간의 계약에 의한 무정부상태의 혼란 극복이라는 근대적 국가성립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조직 운영규정을 가진것은 제국으로의 이행 매개물이라는 걸 반증한다.
제국은 '정의로운 전쟁: just war'이라는 개념을 따라구성된다.
제국의 구성에 있어서 제국 보다는 갈등이 선행적이다.
갈등과 분쟁이 출현하고 그걸 조정하고 관리해야할 명분을 따라서 제국이 구성된다.
이런 제국의 갈등관리 역할은 제국에게 예외성을 부과한다.
제국의 성격은 제국이 가지는 예외성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국의 예외성은 분쟁과 갈등에 대한 개입권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2장. 생체정치적 생산
제국 이전 시기, 근대사회는 훈육사회다.
훈육사회는 개별적 인간이라는 주체들에 대한 관리가 신체의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관리기관들이 선명하게 구획되어 제도화되어 있다.
학교, 군대, 병원, 교회, 감옥, 공장 등과 같은 선명한 제도적 기관들이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삶을 훈육한다.
근대의 주체성은 제도의 외부적 감시와 관리에 포획되어 있다.
주체와 관리감독기구가 분리되어 있어서 주체들이 감각하는 외부적 훈육압력이 명시적이다.
주체들은 때때로 외부적 훈육압력에 저항한다.
제국시기, 탈근대사회는 통제사회다.
훈육사회에 비해서 통제사회는 제국의 주체에 대한 관리가 신체에 직접새겨진다.
제국과 주체가 통일되어 있다.
제국이 요구하는 삶의 양식을 내면의 욕구로 설치한다.
신체에 직접 제국이 그려진다.
근대사회의 제도들은 분명하게 구획선이 그려져 있다.
경계선에 따라 각자의 고유한 영토를 가진다.
이에 비해서 탈근대사회의 제도들은 구분 구획선이 무너진다.
학교-병원-감옥-군대-교회 등의 제도들이 혼종적으로 서로를 가로지른다.
근대적 시각으로 보면 제도들이 붕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유연하게 제국적 삶의 양식을 개인들의 신체에 직접 도안한다.
cf) 근대적 군인은 일정한 훈육의 과정을 통해서 전투를 수행한다.
전투에서는 군대제도라는 외부의 훈육제도가 입력한 행위양식을 재현한다.
전투도 명시적이고, 직접적이다.
이에 비해서 탈근대의 전투는 비가시적이 된다.
모니터에 결과가 산출되는 전투를 수행한다.
군인이 생산되는 과정도 제도의 직접적 훈육과정에 덜 의존한다.
비가시적 전투양식을 컴퓨터게임 등을 통해서 이미 내면화하고 있다.
제국적 군인으로서 행동양식을 제도의 훈육에 선행해서 신체에 직접 획득하고 있다.
cf)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은 제국이 부과한 자본주의의 생활양식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다.
탈근대사회에서 청소년은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포괄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품의 직접 소비자로 위치한다.
그래서 자본에 대한 욕망이 훨씬 강력하다.
자본이라는 형태로 제국이 부과한 생활양식을 신체에 강렬하게 내면화하고 있다.
cf) 이명박이 공공영역을 사유화할려는 시도는 제국의 욕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정책일까?
제국의 관점에서는 공공의 것을 해체해서 사유화하는게 본성에 맞다.
탈주 영역들을 재영토화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서울 강남은 미국이고, 대한민국 1%는 제국의 신민인가?
cf) 대항제국에 대한 구상이 점점더 궁금해진다.
너무 성급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