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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홍상수 영화 또는 남자들의 찌질함


남성 책상물림들의 애로티시즘에 관한 영화?  홍상수 영화.


최근에 홍상수영화들을 여기 저기서 주워다 보면서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특히 남성들은 왜 그렇게 찌질한지!

홍상수가 하려는 말은 단순하다.

우리 모두는 찌질하다.
찌질함이 현실의 진짜 모습이다.

그는 현실의 찌질함을 천연덕스럽게 까발긴다.
배우도, 카메라도, 풍경도 현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너무 작위가 없어 그게 차라리 작위적으로 보인다.
사건을 드라마적인 끈으로 묶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펼쳐보인다.
홍상수는 그게 오히려 진짜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드라마적인 끈이란 인간의 두뇌가 길들여진 사고방식이다.
그걸 해체시키면 남는건 사건들의 맥락없는 분출이다.
그의 영화에는 사건들이 느닺없이 분출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 준비 없이 남녀가 몸을 섞고, 준비 없이 서로 미끌어진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그는 관계란 항상 미끌어진다고 말한다.
세속의 모든 관계란 항상 어긋난다는 거다.

그것이 아무리 순정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지고지순하더라도.
관계의 미끌어짐을 구원할 수 없다.

미끌어짐이 관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김영민 식으로 말하자면 '사랑, 그 환상의 물매'를 홍상수는 끈질기게 물고늘어진다.

관계의 영웅적이거나, 또는 운명적인 서사를 영화에서 빼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그것은 비루한 현실이다.
영웅과 운명이 증발해 버린 세계의 현실이란  누추하고 비루하다.

모름지기 영화적인 서사적 영웅이나 운명의 주인공은 남자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운명과 영웅 이미지를 보완하는 보완재다.
이런 구도가 질기고도 질긴 가부장적 남성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한다.
이게 허황된 이미지 조작이라 할지라도 세속의 인간들은 그런 드라마적 환상을 위안으로 비루한 현실을 버틴다.

끝없이 생산되고, 또 재생산되는 TV드라마 앞의 수다는 이게 없다면 불가능하다.
극장의 연인들을 그 환상의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이게 없다면 불가능하다.

홍상수는 이런 진실을 폭로한다.
운명도 영웅도 그 속에서 환상으로 잉태된 사랑도 다 속절없는 거짓이라고 발설한다.


그의 영화 앞에서 우리 자신의 찌질함이 아무런 치장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비루함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치명적이다.
이게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서 뭔가 '들킨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다.
이곳이 우리가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세속의 시시함 또는 찌질함이라는 일상.
현실이 가부장적인 남성의 세계이므로, 남자의 찌질함 또는 시시함이라는 일상.
그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비상의 토대이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지식인 엘리트들의 자학적인 에로티시즘이다. 

cf) 예전에 홍상수의 영화 '강원도의 힘'을 타이타닉과 바꾸지 않겠다던 어떤 영화평가론가의 글이 있었단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개봉된 타이타닉은 극장을 싹쓸이하고 있었고, 홍상수 영화에는 초췌한 한두명의 관객만이 졸립게 앉아 있었단다.(김영민. 사랑 그 환상의 물매)
당시에는 홍상수 영화들이 너무 불편했다. 최근에 불편했던 그의 영화들에서 무언가 새롭게 읽히는 것들이 있어서 열심히 다시 보았다. 다시 본 소감은 그가 80년대를 살아낸 한국사회 장년층의 전형성이라는 거다. 아무리 외면해도 그가 폭로하는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것 같다. 확실히 그는 도발적 폭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