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은 2012년이 자본의 붕괴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와 동일하게 그는 자본을 자율적으로 운동하는 인격적 주체로 간주한다.
자본은 자신의 운동을 방해하는 현실들을 극복하면서 역사속에서 펼쳐진다.
이런 펼침, 즉 자본의 운동은 자본의 이윤창출이 기본동력이다.
자본의 펼침, 다른 말로 자본의 운동과정을 윤소영은 이윤율 변화과정에 대한 추적으로 보여준다.
이윤율 변화과정은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제시된다.
그는 수학적 모델로 형식화되지 않는 이론은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론적 이윤율 변화과정은 정상분포곡선이다.
그러나 실제의 이윤율 변화과정은 불규칙적 파동형이다.
이론 모델과 달리 실제 이윤율의 추이가 파동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개입때문이다.
이윤율이 하락하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윤율 제고 정책이 도입된다.
자본의 자기혁신 노력의 결과로 실제 이윤율은 파동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은 이윤율제고를 위해서 끊임없이 운동한다.
이 운동이 현실속에서 방해 받으면 이윤율 제고를 위한 자본의 새로운 운동이 시도된다.
그게 역사적 자본주의다.
초기에는 일국내 산업혁명을 통한 공장제 생산방식이고.
이게 한계에 부딪히면 제국주의를 통한 시장의 확장이고.
유럽 자본주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 돌파구가 미국자본주의이고.
미국 자본주의는 산업-교통-정보-금융 자본주의라는 방식으로 이윤울제고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자본주의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최종적인 형태가 금융자본주의다.
금융자본주의 벽은 자본의 붕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붕괴되면 다른 대안적 사회가 없다는 점이다.
자동적으로 자본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낭만주의라고 본다.
자본이 붕괴되고 남은 자리에 오히려 야만적인 전쟁상태나 혼란의 가능성이 오히려 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야만적 혼란으로 부터 그래도 최고로 안전한 사회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봉건적 생산양식이 붕괴되고 새로운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가 탄생하기 까지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100년이란 일상적 전쟁상태였단다.
그런 재앙을 우려한다.
그걸 피할수 있는 길은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인간들의 능력이다.
그건 '지역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자치능력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cf) 강의가 다 끝나고 그의 열정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외면한 마르크스를 살려내려는 그의 각고한 삶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적 치밀함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그의 이론을 의구심으로 바라보게 한다.
너무 냉소적인가?
아마도 뿌리깊은 부루조아적 정서 때문일거다.
고도로 형식화된 논리구조를 신뢰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감수성 때문일거다.
마르크스와 동일하게 그는 자본을 자율적으로 운동하는 인격적 주체로 간주한다.
자본은 자신의 운동을 방해하는 현실들을 극복하면서 역사속에서 펼쳐진다.
이런 펼침, 즉 자본의 운동은 자본의 이윤창출이 기본동력이다.
자본의 펼침, 다른 말로 자본의 운동과정을 윤소영은 이윤율 변화과정에 대한 추적으로 보여준다.
이윤율 변화과정은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제시된다.
그는 수학적 모델로 형식화되지 않는 이론은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론적 이윤율 변화과정은 정상분포곡선이다.
그러나 실제의 이윤율 변화과정은 불규칙적 파동형이다.
이론 모델과 달리 실제 이윤율의 추이가 파동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개입때문이다.
이윤율이 하락하면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윤율 제고 정책이 도입된다.
자본의 자기혁신 노력의 결과로 실제 이윤율은 파동형태로 나타난다.
자본은 이윤율제고를 위해서 끊임없이 운동한다.
이 운동이 현실속에서 방해 받으면 이윤율 제고를 위한 자본의 새로운 운동이 시도된다.
그게 역사적 자본주의다.
초기에는 일국내 산업혁명을 통한 공장제 생산방식이고.
이게 한계에 부딪히면 제국주의를 통한 시장의 확장이고.
유럽 자본주의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 돌파구가 미국자본주의이고.
미국 자본주의는 산업-교통-정보-금융 자본주의라는 방식으로 이윤울제고가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자본주의 운동을 전개해 왔다.
그 최종적인 형태가 금융자본주의다.
금융자본주의 벽은 자본의 붕괴다.
문제는 자본주의가 붕괴되면 다른 대안적 사회가 없다는 점이다.
자동적으로 자본이 붕괴하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낭만주의라고 본다.
자본이 붕괴되고 남은 자리에 오히려 야만적인 전쟁상태나 혼란의 가능성이 오히려 더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야만적 혼란으로 부터 그래도 최고로 안전한 사회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의 봉건적 생산양식이 붕괴되고 새로운 근대적 자본주의 사회가 탄생하기 까지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100년이란 일상적 전쟁상태였단다.
그런 재앙을 우려한다.
그걸 피할수 있는 길은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인간들의 능력이다.
그건 '지역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자치능력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cf) 강의가 다 끝나고 그의 열정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모두가 외면한 마르크스를 살려내려는 그의 각고한 삶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적 치밀함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그의 이론을 의구심으로 바라보게 한다.
너무 냉소적인가?
아마도 뿌리깊은 부루조아적 정서 때문일거다.
고도로 형식화된 논리구조를 신뢰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감수성 때문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