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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용산문제 타결


포털에 용산문제가 타결됐다는 기사가 떴다.
마음속에 항상 찜찜함으로 있던건데 속이 뻥 뚫린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용산문제는 한국사회 문제의 종합적 상징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박정희의 '잘살아보세'라는 욕망에 뿌리를 둔 한국사회 전체의 자화상 같은 문제였다.
당사자들과 문정현 신부 같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용산문제의 죄책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것이다.
그 비극성을 뻔히 알면서도, 우선 나 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심때문에 모두가 용산문제를 외면해 왔다.

용산문제는 박정희가 깔아놓은 물질적 욕망의 메트릭스에 한국사회가 철저하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노출시켰다.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의 박정희식 근대화 모델은 사회전체를 물질적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트렸다.  

물질적 욕망의 메트릭스로 부터 자유로운 삶이란 어떤 것일까?
솔직하게 자신없다.
살면 살수록 내가 박정희시대의 산물이란걸 뼈저리게 느낀다.
달이차면 기운다고 하던데, 이 시대의 욕망이 끝장을 보아야하나!
그러면 새로운 기운이 어디선가 움틀까?

앞으로도 지난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어찌됐든 용산문제에 숨통이 트여서 기쁘다.
개발이고 나발이고 다 살자고하는일인데, 제발 사람 죽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그런 정도에서 한국사회가 갈등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