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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먹기 또는 놀기

영국

자주 들락거리는 블로거가 영국을 여행중이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나도 여행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싸지르고 다닌것이 아까워서, 기록으로 정리해 둘 필요성을 느꼈고.
다른 하나는, 여행은 인간을 가장 심도있게 변화시키는 일종의 사건이라는 판단이다.
여행중에 마주친 이질적인 것들이 사람을 어떤식으로든 변화시킨다.
감각에 대한 자극이 논리적 이성에 대한 호소보다 훨씬 강력하다는걸 미학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우리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은 정교한 논리적 철학체계라기 보다는 오히려 소설한권, 음악한편, 그림한장과 같은 미학적 감각에 대한 자극이라는 거다.
이걸 사후적으로 정리한 것이 결국 학문이라는 이론체계라는 거다.
결국 예술창작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최초의 인식이고, 그걸 설명해주는 비평이 학문이라는 모양으로 뒤따라 온다고 보아야 한다는 거다.

여행은 그런 점에서 가장 심도 깊은 감각에 대한 자극이다.
내가 여행중에 마추친 이런저런 풍경과 경치들도 어떤 식으로든 내 내면에 변화의 격랑을 일으킨 자극이었던걸 요즈음 들어 새롭게 깨닫는다.

1.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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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아이 주변으로 웨스터민스터도 있고, 걸어서 가볼 수 있는 많은곳이 있다. 테임즈 강변에 있어서 그냥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서 놀기 좋다. 가까이 무슨 유명한 공연장도 있었던거 같다)


영국을 여행하기로 작정하고 비행기표를 알아보았다.
국내 항공사들의 왕복 티켓은 어떤 경우든 백오십만원을 넘었다.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니 싼 비행기표가 나왔다.
모두 인접국 외국항공사였다.
반 값 정도였다.
흠은 비행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다.
인천에서 해당 항공사 메인공항을 경유하는 항로를 따라가야하니 당연히 비행시간이 늘어난다.
바쁜 비즈니스 여행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영국여행을 위해서 선택한 항공편이 홍콩 국적 캐세이퍼시픽이다.
인천에서 출발했다.
그 당시가 막 인천공항이 개항한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었다.
여름 장마철의 비에 쫄딱 맞은 인천공항은 초현대식 으리으리함을 비웃듯 여기저기 비가 새어들어 빗물이 공항 여기저기에 질퍽거렸다.
경유공항인 홍콩 첵락콥 공항에서 7시간 정도를 빈둥거리며 놀았다.
인천공항보다 훨씬 크고 사람들이 몹시 붐볐다.
동남아국가에서 부자 나라들인 유럽으로 돈벌러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유난히 많다,라고 느켰던 기억이 있다.
첵락콥에서 런던 히쓰로 공항까지는 거의 15시간 가까이 걸린것 같다.
히쓰로 공항에 내리니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겨우겨우 입국통로을 찾았는데, 여기서 기분 나쁜 상황과 조우해야했다.
EU국 출신들은 입국 통로가 따로 있는데 그냥 여권만 보여주고 주-욱 걸어나갔다.
나 같은 제삼국 출신들은 입국심사대를 거쳐야했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꼭 형사취조 하듯이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버벅 거리며 겨우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진짜로 아수라장인 공항 내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가 어딘지 방향감각을 잡을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전 한국에서 긴급상황시 도움을 청할 한국인게스트하우스를 몇개 가지고 있었지만 도움을 청하기에는 너무 늦은것 같고, 왠지 그러기도 싫었다.
그냥 멘땅에 헤딩하기로 부딪히자고 생각했다.
공항안의 Information center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이 사람들이 무지무지무지무지하게 친절하다.
모든 정보 다 자세히 갈쳐준다.
아무리 버벅거리는 영어도 다 참아준다.
무조건 싼데 갈쳐주라고 해서 워털루역 근처 정말로 거지 소굴 같은데서 하룻밤을 겨우 보냈다.
다음날 마음을 진정하고 주변을 보니, 모두 거지 같고, 긍방 권총을 빼들 갱들 같은데 부딪혀 보니 그리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었다.
거의가 20대인데 독일놈, 스위스놈, 아프리카놈,일본놈 별의별 놈이 다 있었다.
모두 여행중인 젊은이들이었다.
런던에 있으면서 이 친구들한테 많은 도움을 얻었다.
여기저기 박물관도 구경하고, 미술관도 구경하고, 템즈강변에서 산책도 즐기고, 공원에서 룸펜처럼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런던은 진짜로 궁전이 많다(궁전 아니면 사원 아니면 무슨 교회들이다).
무슨놈의 궁전이 그렇게 많은지 고대 도시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 사이사이에 있는 공원들에 가면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다.
이상한 악기 하나들고 삥 뜯는 놈에서 부터, 마술하는 놈, 민속 공연하는 놈 정말로 별놈 다 있다.
템즈강은 머릿속 이미지와 거꾸로 였다.
완전 흙탕물에 더럽기가 한강물 빰쳐 보였다(실제 더러운지 어쩐지는 모른다. 서해안물도 흙탕물이기는 마찬가지다).
런던의 여기저기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곳들은 그때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나중에 이게 진짜 소중한 경험이 되었단걸 진중권의 미학 강의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런던에 가거들랑 미술관 같은곳엘 많이 가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살인적인 런던의 다른 물가에 비해서 입장료가 진짜로 싸다.
돈 아끼면서 런던에서 시간을 보낼려면 미술관 같은곳엘 가보길 권하다.
나중에 안건데 8월의 런던은 외국인 천국이란다.
영국인들은 외국으로 빠지고, 외국인들이 런던으로 몰려오니 당연히 외국인 천국일 수 밖에 없다.
이 사람들이 런던에서 온갖 잔치를 벌이니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다.
휴가기간이라 물가가 좀 쎄다는 흠결이 있지만 이게 한여름에 런던을 여행하는 재미일것 같다.

2. 포츠머스

런던에서 열흘 가까이 지내고, 같이 지내던 스페인 젊은 놈하고 동행해서 포츠머스라는 곳으로 갔다.
이놈과 동행하면서 나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
런던에서 워낙 후지게 살아서 포츠머쓰에서는 B&B생활을 했다.
B&B는 훨씬 숙박비가 더 들기는 했지만, 방도 깨끗하고 영국 중산층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돈은 철저히 더치페이를 했지만 모든 여행일정은 이놈이 알아서 다했다.
나는 그냥 니가 다 알아서 해!하고 나자빠졌다.
그래서 그런지 포츠머쓰에서 한일은 거의 기억이 없다.
그냥 매일 펍에가서 술먹고 논일만 생각난다.
그렇게 빈둥 거리며 지내다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
이 친구는 포츠머쓰에서 영국아가씨를 사귀게 되었고, 나는 같이 동행하니 무기력해지는게 싫증이 났다.

3. 본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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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머스해변인데 여른철에는 저녁마다 어마머마한 불꽃 놀이를 한다)

프츠머스에서 부터 본머쓰가 영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항구라는 말을 들었다.
본머쓰에 도착해서 혼자 행동했다.
런던에서 처럼 백팩하우스를 잡아놓고 살았다.
거지소굴로 다시 들어간거다.
본머쓰는 정말로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그림같은 해변과 백사장, 거기서 즐겁게 뛰어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행복감이 밀려 들어왔다.
백팩 하우스에서 임대한 자전거로 날마다 해변으로 놀러갔다.

시저가 영국을 정벌할때 갈리아(프랑스)에서 함대를 끌고 도버 해협을 건넌다.
파도를 헤치고 영국땅에서 제일 먼저 본것은 하얀 해안 절벽이다.

본머쓰 해변이 그렇다.
하얀 절벽으로된 해안이 있고, 그 밑에 고운 모래사장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다.
족히 십여킬로의 해안선을 따라서 그림같은 호텔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면서 공부하는 한국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재미있는 사례하나 : 저 한국에서 전문대학에 다녔어요. 영어 좆도 못해요. 인생이 막막해서 어떻게 겨우겨우 돈 마련해서 영국에 왔어요. 오자마자 일자리부터 구했어요. 병원에서 나오는 세탁물 처리하는일 어찌어찌 하다가 구했어요. 일만하다 보니까 정작 영어 공부는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또 다른 갈등이 심해요. / 그래도 니가 장하다. 나는 니 나이때 너처럼 행동하지 못했는데. 니가 나보다 훨씬 휼륭하다.(이때가 2000년 이니까 영국에서 직장구하는 일이 어쩔지 모르겠다. 갈수록 유럽국가들이 제삼국인들에 대한 이런저런 제한조치를 강화한다고 들었다)

한 여름의 본머쓰해변은 런던 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밤마다 펼쳐지는 불꽃놀이(fire work)도 장관이었고,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소소한 구경거리 들도 많았다.
해변가 어디서나 한자로 된 문신새겨넣기에 열중하는 영국놈들을 보면서, 오리엔탈리즘의 일면을 보는것 같아서 입 맛이 좀 썼다.
샛길로가는 주젠데, 영국놈들한테 일본은 환상의 나라다.
스시는 영국 사람들이 제일좋아하는 최고급 음식이고, TV 퀴즈쇼 같은걸 보면 과장되게 10문제중 최소한 2문제는 일본관련 지식을 묻는다.

본머스에서 재미난 또다른 경험은 공용 골프장이다.
골프장이 시내 한가운데 공원처럼 있다.
담장도 없고, 아무데로라도 들어갈 수 있다.
곳곳에 울창한 숲이 있고, 마음대로 산책도 할 수 있었다.
골프장에서 조깅하고 재미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본머스 백팩하우스에서 어느날 파티가 벌어졌다.
거기 머무는 놈 중의 하나가 생일이었다.
모두 돌아가면서 자기 나라 고유의 생일축하노래 비슷한 것들을 해주었다.
난감했다.
내가 아는 한국고유 생일축하 노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버터냄새가 나는 'Happy Birthday To You'를 부르면서 쪽팔려 얼굴이 뜨뜻해지는걸 어쩔 수 없었다.

4. 옥스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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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살아나는 옥스포드)


옥스포드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표 판매하는 아가씨에게 개 무시 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런던에서는 정통 영국식 영어가 아니더라도 크게 신경이 안쓰인다.
워낙 외국인들이 많으니 다양한 영어에 사람들이 익숙해져있다.
지방으로 갈수록 버벅거리는 발음과 어휘선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게 옥스포드 터미널에서 개무시 당한 배경이다.
처음 한두번 내 질문을 받아주더니, 그냥 입 꾹 다물고 나하고 아예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숨기려하지 않았다.
버벅거리는 영어를 못 참아주겠다는 또는 노랑둥이들과 어울리기 싫다는 치욕적 경험을 한달동안 있으면서 서너번은 겪은거 같다.
다행이 눈길 닿는곳에 Information Center라는 팻말이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백팩하우스를 소개 받고 여장을 풀었다.
샌드위치사서(이게 영국에서는 제일싸게 먹히는 식사다) 대충 저녁 때우고, 술한잔하러 펍에 갔다.
옥스포드가 좋은건 술값이 싸다는 거다.
영국에서는 술집을 보통 펍이라고 부른다.
옛날 동네마다 한곳씩 있었던 막걸리 집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이곳에 가면 달랑 맥주 코크와 파인트라는 컵 그리고 테이블이 전부다.
맥주 종류가 많으니 맥주 코크가 최소한 5개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파인트라는 잔은 500cc가 조금 넘는 맥주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코크 앞으로 가서 돈주고 파인트한잔 받아서 아무 테이블이나 앉아서 술 마신다.
영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맥주는 기니스다.
이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정말로 대단하다.
먹어보면 막걸리처럼 텁텁한데, 맛은 굉장히 쓰다.
오랫동안 먹어보지 않으면 익숙해지기 힘든 맛이다.
대부분의 펍이 안주는 없다(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좀 황당한 경우는 누군가 저녁에 술 한잔하자고 한다.
가보면 자기 돈 내고 자기 파인트잔 채워서 술먹어야한다.
우리처럼 초대 받았으니 돈 없이 가도 되겠구나,하면 큰 일 난다(술 안마시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아뭏든 옥스포드가 좋은건 술 값이 싸다는 거다.
다른 도시들이 파인트 한잔에 5000원 가까이 받았는데 여기서는 3000원 정도 였던거 같다.
어디서나 대학생들은 가난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특히 런던의 술값은 무지하게 비싸다.
펍의 비싼 술 값을 아끼려고 수퍼에서 병맥주사서 길거리에서 술 마신적이 많이 있다.

옥스포드는 술 값이 싸다는걸 제외하면 정말로 재미 없는 도시였다.
도시전체가 대학이어서, 어디나 심심했다.
이놈들은 놀지도 않나 할 정도로 거리가 심심했다.
근데 해지고 펍에가면 상황이 달라졌다.
비로소 사람사는 느낌이 들었다.
젊은 놈들이 드글드글 얽혀서 술먹고, 흥청거리고 놀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거리는 졸리운 기색이 역력했다.

옥스포드에서 한가롭게 몇일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나른함을 견딜 수 없었다.
런던으로 돌아와 하루 더 묶고 다시 캐세이퍼시픽에 몸을 실었다.
히쓰로에서 첵랍콥까지 3등석이었는데, 첵랍콥에서 인천까지 승무원이 비즈니스석으로 옮겨주었다.
자기비행기를 이용한 감사의 표시란다.
3등석에 타면 비행기 이륙하고 바로 밥먹여서 커튼 내리고 불 끄고 재운다.
비행시간이 길면 중간에 다시 한번 깨워서 밥 먹이고 다시 커튼 내리고 불 끄고 재운다.
마치 사육당하는 돼지 취급한다는걸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좌석은 어찌나 좁은지!
근데 비즈니스석으로 옮기니 예쁜 아까씨가 항상 옆에 붙어서 눈만 껌벅여도 시중들일 있냐고 묻는다.
밥도 다르고, 간식도 다르고, 술도 다르고, 심지어 심심풀이도 먹는 초콜릿도 달랐다.
거기 있을때는 좋았지만, 항상 외국여행할때마다 3등석을 이용하니 그때 기억이 나서 기분이 나쁘다.
차라리 모르는게 좋았을걸!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맛보여주고 매달리게 하는게 일종의 상술인줄 뻔이 알면서도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cf) 써 놓고 보니 맨날 술 먹은 것 밖에 없다. 이놈의 술 언제 끝날려나!

cf) 몇일전 까지 불타오르던 정치적 각성이 갑자기 마음속에서 사그란진걸 느낀다. 이놈의 변덕증도 언제 끝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