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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아이비리그 보다 똑똑한 작은대학

아이비리그보다 똑똑한 ‘작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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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햄프셔 칼리지 학생들. 이 학교는 자유교양 또는 인문교양대로 번역할 수 있는 4년제 정규대학 ‘리버럴 아츠 칼리지’의 하나로, 〈인생을 바꾸는 대학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40개 학교에 들어간다. 매우 미국적인 학제인 자유교양대는 세부전공보다 전반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고 학생 개개인의 인성을 계발하며 사회정의 의식을 폭넓게 기르는 게 좋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큰대학들과는 지향이 다른 이들 대학에 미래가 있다.


안과 밖 / 미국의 자유교양대학들

지난해 가을 나는 이곳에서 엑발 아흐마드 교수의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그 전에는 몰랐던 사람이지만 노엄 촘스키 교수가 강연을 한다고 하니 안 가볼 수 없었다. 큰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촘스키 교수가 입장할 때 잽싸게 일어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에 돌아가 학생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그 모임을 통해 나는 파키스탄 출신의 정치학자였던 아흐마드 교수의 치열한 생애를 접했다. 19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에 제일 먼저 뛰어든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일리노이대학, 코넬대학 등에서 가르치다 80년대 초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 있는 햄프셔 칼리지라는 작은 대학에 전임교수로 부임했다. 촘스키 교수의 강연에 이어 햄프셔 칼리지의 옛 동료가 인사말을 했는데 그때 나는 햄프셔가 독특한 대학임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나는 고등교육계를 나름대로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중간결론은 이렇다.우선,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던 공·사립 메이저대학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학교육 전체를 이해하려는 것은 코끼리 만지기 식의 무리한 시도다. 다음, 한국의 모든 대학들이 미국의 대학들, 특히 연구중심 대학을 흉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내가 색다르다고 생각한 제도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는 교육기관이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말 그대로 ‘자유교양’ 또는 ‘인문교양’ 대학이다. 4년제 정규대학이지만 개별 전공을 강조하는 일반 유니버시티와는 다르다. 대학원이 있는 곳도 있지만 대개 학부교육 중심 대학이다. 자유교양대는 적어도 학부에서는 세부 전공보다 전반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고 학생 개개인의 인성을 계발하며 사회정의 의식을 폭넓게 기르는 게 좋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교수-학생 긴밀한 유대

자유교양 교육은 일곱 영역으로 나눠서 가르친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정치과학, 역사, 문학 또는 글쓰기, 수학, 그리고 미술과 음악이다. 일반 유니버시티에서도 자유교양 과목을 가르치지만, 폭넓게 인문교양 전반을 익히려면 자유교양대가 아무래도 한 수 위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두루 거친 어떤 한인 2세는 내게 자기 아이만큼은 자유교양대에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자유교양대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갈 수도 있고,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싶으면 직업대학원(경영, 법학, 의학, 신학), 학문을 더 하고 싶으면 일반대학원으로 진학하면 된다. 나는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에 자유교양대가 따로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단히 미국적인 학제다.

자유교양대는 교수와 학생 간의 긴밀한 유대를 강조한다. 연구활동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일차적 목표를 학생의 교육에 둔다. 자유교양대 내에도 비싼 사립대와 공립대, 여대와 남녀공학, 일반계와 종교계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자유교양대는 유니버시티에 비해 학생 수가 적고, 과목당 수강생도 적으며, 교수-학생 비율도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흔히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학부 수업을 담당하곤 하는 유니버시티와는 달리, 교수가 학생을 직접 가르친다.

자유교양대를 나와도 사회에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오히려 더 인정해 주는 사례도 많다. 얼마 전 하버드대학의 차기 총장에 선출된 드루 파우스트 교수도 펜실베이니아주의 브린 마우어 칼리지라는 자유교양 여대를 졸업한 학자다. 자유교양대 중 명문에 속하긴 하지만 아이비리그가 아닌 초미니 대학이다.

자유교양대 출신이 전체 대졸자의 10퍼센트에도 훨씬 못 미치지만 그들의 활약은 이처럼 만만찮다. 물론 자유교양대의 장점은 자유교양 교육이라는 대전제에 찬동해야 인정할 수 있는 장점일 것이다. 미국인들도 일류대라는 지명도가 부여하는 광채 앞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자유교양대는 컨소시엄이나 연합체를 만들고, 비슷한 학교들끼리 모여 전국적으로 대학설명회를 다니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학 순위를 매기는 기관에 저항하자는 운동까지 조직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의 서열을 매년 발표하기로 유명한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에 대해 자유교양대들의 공세가 조직화되고 있다. 현재 자유교양대 총장들은 이 잡지에 대해 대학자료를 제공하지 말고 학교 홍보자료에서 랭킹을 인용하지 말자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자체를 학생 선발 기준의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하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졸업생들, 사회적 활약 두드러져

그런데 자유교양대학 섹터 내에서 유별난 움직임이 하나 더 있다. 여기서 로런 포프라는 올해 아흔여섯 살의 ‘현직’ 대학교육 상담가가 등장한다. 신문기자, 돼지농장 운영, 지방자치단체 의원 등을 하다 1965년에 고등학생을 위한 대학진학 상담소를 차렸던 양반이다. 대학을 잘못 선택해 인생 망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공분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가 1996년에 낸 〈인생을 바꾸는 대학들〉이라는 책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전국적으로 내실 있는 자유교양대 40군데를 선정하여 설명한 책이다. 동네 도서관에 갔더니 언제나 대출 중이어서 여러 서점을 뒤져 겨우 읽어 보았다. 그는 우선 대학의 ‘명망성’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자유교양대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흐름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자는 것이다.

그는 명성이냐 내실이냐를 놓고 학생, 학부모, 교사, 사회가 단연코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은 가족과 같은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대학이다. 자유교양, 인문정신에 충실한 대학이다. 그렇게 봤을 때 대학에 서열을 매기는 이는 ‘참 나쁜 사람’이다. 왜? 대학 서열이란 대개 교육자원의 투입물을 수량화해서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연구 성과와 같은 산출물도 학부 학생의 진정한 전인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대학에 서열을 매겨 잠재력이 창창한 어린 학생들의 기를 죽이는 것은 사회적 범죄행위다.

또한 입학 때 학생을 선발하는 것보다, 오겠다는 학생을 되도록 다 받아서(물론 정원 내에서) 잘 키워 내보내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본다. 대학의 크기와 교육의 질도 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 명에서 2천 명 정도의 작은 대학이 이상적인 학문 공동체일 수 있다.

그는 자기의 교육철학을 입증하기 위해 전국의 작은 대학들을 직접 찾아다녔다. 그중에서 이미 유명하거나 입학 경쟁률이 높은 대학을 제외하고, 숨어 있는 작은 좋은 대학 40곳을 가려낸 것이다. 지난해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초판에 나왔던 몇몇 대학은 탈락시켰다. 좋은 학교라고 알려지면서 선발 기준이 엄격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인생을 바꾸는 대학들〉에 나오는 40개 학교 중에 역시 햄프셔 칼리지가 들어 있었다. 그 외에는 모두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다.

그는 햄프셔 칼리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우선 진보적인 자유교양대를 지향하므로 교수진의 사회의식이 투철하다. 학년 구분이 없고, 서클도 없으며, 체육특기생 제도도 없다. 학생들에게 실험정신을 강조한다. 교수와 학생이 항구적으로 의미 있는 교류를 맺으려 노력한다. 배움에 있어 타인과의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가르친다. 자기 내면과의 씨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든 과목에 학점이 없다. 대신 학기말에 학생 개개인에 대해 교수가 정성들여 쓴 상세한 평가서가 나온다. 평가서를 통해 학생은 숫자가 아닌 ‘언어’로써 자신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학교 학생들의 논문이나 예능작품은 깊이가 있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자기 자신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햄프셔 칼리지를 나온 뒤 수의과대학원에 진학했던 어떤 학생은 “평가서 정신 덕분에 동물 하나하나에 개별적인 사랑을 쏟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큰 대학’ 맞설 ‘마이너리그’를

»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이 학교는 졸업생을 상대로 학교를 떠난 10년 후 설문조사를 벌인다. 우리 학교를 나온 게 과연 어떠했는가? 졸업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모교가 자기들의 “인생을 진정으로 바꾸었다”고 응답한다고 한다.

자유교양대학 제도를 우리나라 맥락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작은 학교라면 포프 식의 전향적인 자유교양대를 추구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대학들이 ‘리버럴 아츠’의 교육철학과 수공예적인 교육방식에 공감해야 한다. 둘째, 작은 대학들끼리 뭉쳐 큰 대학을 동경하는 정신적 탯줄을 끊고 마이너리그를 구성해야 한다. 셋째, 학부 중심 교양대학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일어야 하고, 교원단체나 교육운동단체가 그런 움직임을 밀어줘야 한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런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다섯 수레만큼 책을 읽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다. 

(출처:2007.5.10. 한겨레신문)
 조효제/하버드대 로스쿨 인권펠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cf) 오래 전에 한겨레신문 책관련 섹션란이 따로 있을 때 거기서 읽은 글이다.
이걸 찾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나는 조효제의 관점이 한국대학 개혁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명문대를 향한 열망은 inner circle에 가입하고 싶다는 심리의 반영일 뿐이다.
그런 기제에 편승한다는 것은 개인차원에서는 물질적 이익에 눈먼 삶의 태도고,  
대학차원에서는 학위장사를 통한 인맥형성에 불과하다.
여기서 벗어난 진짜 대학이, 진짜 공부하는 대학이 나와야 한다.
포항의 한동대나 성공회대 같은 대학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오늘도 꼰대 같은 소리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