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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대기

학교를 어떻게 뜯어 고칠 것인가?

[곽병찬칼럼] 선무당의 칼춤
곽병찬칼럼
한겨레 곽병찬 기자
» 곽병찬 논설위원
학력 문제로 가장 고민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학업성취도 조사(PISA·피사)에선 거의 매번 중하위권을 맴돈다. 2003년 미국의 자체 평가(국가표준시험)에서도 8학년의 수학 기초학력 미달률이 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은 11.5%) 고교생 졸업률은 70%(공립고교의 경우 50%)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학력신장법까지 제정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정부나 언론은 새로운 모델을 찾느라 분주했다. 대학 종합평가로 명성을 쌓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앤 월드리포트>는 지난 3월 미국이 교육 부문에서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로 핀란드를 꼽았다. 새로운 건 아니었다. 다른 유력지들도 핀란드 교육 방식을 본받자는 데 이구동성이었다. 피사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교육경쟁력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핀란드의 이런 교육 경쟁력은, 600여년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지구촌 변방 핀란드의 국가경쟁력을 세계 6위로 끌어올리면서, 핀란드를 첨단산업의 기린아로 키웠다.

핀란드의 교육정책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출신과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99%가 공립이며, 모든 과정이 무상이다. 교재비나 생활비의 일부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수학능력 시험이나 본고사처럼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일은 없다. 나라에서 치르는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어느 대학이든 지망할 수 있고, 각 대학은 집단 토론 등 간단한 절차를 거쳐 학생들을 선발한다. 그러니 대학 서열이란 것도 없다. 다른 나라 연구기관이 대학 서열을 매기는 걸 보고 핀란드인들은 그저 웃기만 한다.

지난 10월 방한했던 핀란드 교장협의회 피터 존슨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경쟁은 스포츠에나 필요하지, 교육엔 필요 없습니다.” 경쟁을 붙일 경우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학생들은 학업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어 장기적으론 학습효과를 떨어뜨린다. “모든 학생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의 능력에 맞춰 교육을 하는 게 교사의 일입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며, 각자에겐 서로 다른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정책은 1970년대부터 20여년에 걸쳐 완성됐다. 총리가 바뀐다고 교육정책이 바뀌는 일은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교육부는 물론 교육정책에 대한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지금의 정책은 문민정부가 토대를 닦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것이다. 12~13년에 걸친 작업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판이다. 물론 정책을 바꿀 순 있다. 문제는 정책 전환의 철학과 목표, 그리고 비전이다. 그런데 인수위엔 그런 청사진이 없다. 그저 역주행이다. 중등과정은 실패한 미국 모델을 본뜨고, 대입제도 등은 30년 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나마 제시한 정책 목표와 수단도 서로 충돌한다. 사교육비 절감을 강조하지만, 이들의 정책에 환호하는 건 사설 학원이다. 교육의 형평성을 주장하지만, 입시를 확대하고 귀족학교와 서민학교를 분리하는 것으론 불평등만 심화시킨다. 학력 신장을 거론하지만, 핀란드엔 입시제도가 없다.

인수위에 합리적인 교육 전문가가 없다는 건 더 큰 문제다. 그저 호령할 줄만 알고, 제가 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우물안 개구리뿐이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를 5년 내내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지금 인수위를 보면 선무당이 칼춤 추는 것 같다. 끔찍하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cf) 나는 직업이 교사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항상 교육에 관심이 높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교육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만큼 우리교육이 불만족스럽다는 반증이다.
그중 보수 이데올로기가 유포시킨, 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의견은 '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다.
이 험한 세상에 나라가 살기위해서도, 개인이 살기 위해서도 경쟁력을 키워야하고, 그러자면 교육자체가 빡세게 경쟁을 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거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뒷 받침하는 상식들은 진화론적 사고다.
생물학에서 시작된 진화론은 현재는 거의 모든 과학과 인문학에 폭 넓게 유포되어 있다.
그래서 이게 사회전반에 발생하는 이슈들을 해석하는 가장 강력한 해석기반이다.
이 틀을 가지고 일상을 해석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 이거나, 미친놈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가진 사고방식, '생물체는 주어진 환경에 최대로 적응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생각은 진화론의 발생지, 생물학에서는 근본적인 의문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라고 말해진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진화론은 생물이라는 하나의 종에 속하는 개체는 자기가 가진 고유한 유전자의 유전학적 특이성(DNA)를 실어나르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라고 이해했다. 이 과정에서 진화는 이 DNA를 더 잘 실어나르는 일정한 방향(목적론적 방향)을 따라 이루어진다. 당연하게 이 목적론적 방향에서 최고로 발달한 형태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의 방향은 선형적인 모양으로 그려지고, 일종의 잘 정돈된 나무모양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 나무 모양의 진화의 맨 꼭대기에는 인간이 있다(수목형진화).

그러나 최근의 연구성과들은 이런식의 진화모델이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이성이 만들어낸 작위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실제 진화의 양상은 수목형이 아니라 리좀형이라고 한다. 리좀이란 나무뿌리의 잔가지를 가리킨다. 나무 뿌리는 나무의 윗부분과 달리 무정형한 형태로 여기저기 복잡하게 산포되어 있다. 나무 뿌리가 나무의 윗 부분과 다른 결정적인 것은, 계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뿌리가 줄기의 뿌리가 될지는 임의적이고, 설사 어느 뿌리가 임의적으로 줄기 뿌리가 되었다할지라도, 뿌리의 연결과 성장과정에서 그런 줄기성은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리좀적이라는 것은 선형적 계통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전적인 진화론은 환경이라는 고정된 객관적 사실에 생물종들이 수동적으로 적응한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물 종들이 환경에 대한 수동적 적응자가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는 능동적 행위자라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환경과 생물종이 결합해서 함께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런 과정에서 진화는 창조적이지만 임의적인 방향으로만 발생한다는 거다.(화학의 자기촉매작용이라는 현상도 이런 생각을 뒷 받침해준다)

우리가 이런 최근의 진화론을 받아들인다면 경쟁을 통해서 승리한 종만이 살아남는다는 고전적인 진화론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생물종들이 생존하고 진화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다른 종들과의 협력을 확보하고, 다른 종들과의 기능을 교환하는 등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현재와 같이 모양지어진 것은 다른 생물종 또는 환경과의 상호작용 결과아지, 일방적으로 자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라는거다.

그래서 말인데 경쟁을 통한 생존모델로서 교육 말고, 공존과 협동, 상호존중, 다양성의 존중 뭐 그런 교육모델이 더 바람직하다는 거다. 위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진환론에 대한 서사는, 곽병찬의 핀란드 교육모델을 지지하려고, 경쟁을 통한 승리자의 생존 이데올로기를 깨 부술려고 동원한 거다.

가장 경쟁을 강조하는 영국이나 미국의 공교육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대처가 영국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나서 영국의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져서 교사공급을 못해서 아프리카나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 겨우겨우 교사를 공급해 쓴건 세상이 다아는 이야기다. 그렇게 경쟁을 강조하는 미국의 교육시스템도 무너진지 오래된걸 모두가 다 아는것 아닌가? 근데 우리는 이걸 본 받지 못해서 안달이니 울화증이 나서 쓴 글이다.(미국의 대학이 경쟁력이 있는건 다른차원이다. 교육시스템의 우월성이 아니라 전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는 힘이 전세계의 인재들을 끌어 모으고, 그걸 풍부한 돈으로 뒷 받침해주니 경쟁력이 발생한거다. 그걸 공병호는 미국대학의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아전인수가 따로 없다. 그리고 최근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미국대학의 진짜 경쟁력은 하버드나 MIT 같은 거대 대학이 아니라 수 많은 기본 교양교육에 충실한 100여개에 달하는 소규모대학에서 나온단다. 다음은 그에 관련된 자료 웹사이트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58539.html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084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