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잘생긴 클루니를 보려고 영화를 선택했다.
100분 동안 실컷 클루니를 보여주니 나 같이 얼빠진 입장에서 불만은 없다.
내가 클루니를 탐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보다 좀더 젊었던 시절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남성상이다.
클루니처럼 잘 정제된 이미지가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선택은 일종의 회고적 뒤돌아보기 행태다.
정말 내가 늙었나, 보다.
물론 젊었던 시절 클루니와 나를 비교한다면, 내가 훨씬 빛났지 싶다.
하지만 나를 아는 대부분은, 술에 쩔어 거의 노숙자나 다름 없는 이미지를 떠 올릴것 같다.
자학과 나르시즘 사이에서 심하게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ㅋㅋ.
영화를 보면서 이건 미국의 자화상에 대한 무의식적 자기성찰의 이야기다,는 생각이 줄곳 따라왔다.
나이 들어 절정기가 지난 최고 킬러가 있다.
아직도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도 있다.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절치부심하면서 자기관리도 철저히 한다.
그렇다고 저무는 해를 붙잡아 둘 수는 없다.
클루니가 불안한 눈동자로 뒤돌아 보는 모든 모습에서 불안한 미국의 시선이 느껴졌다.
제목 'The American'이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그 미국인'이란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유일 최강대국 미국의 자화상이다.
미국의 원조인 구대륙, 유럽인들에게 아직도 그 미국인은 패권자로 행세한다.
여전히 그 미국인은 깽판을 부리고, 함부로 총질을 해대고, 무엇 보다도 식민지 주인 마냥 예쁜 여자들과 연애질에 분주하다.
그럼에도 그 미국인의 흔들리는 불안안 눈동자는 숨길 수 없다.
서스펜스 킬러 영화 같지 않게 아무런 극적 긴장감이 없다.
여기저기 탐미도 아니고 멋도 아닌 클리셰만 잔뜩 깔아 놓았다.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결말도 그렇고.
잘 찍은 사진들만 넘쳐난다.
남자는 너무 전형적이고, 여자는 너무 전형적이다 못해 찌찔해 보인다.
요즈음은 삼류 신파에서도 이런 전형적인 연애질로는 이야기를 끌어가기 힘들다.
클루니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던데 잘생긴 외모 빼 놓으면 그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상업적 버전의 스릴러 영화가 구대륙의 옛마을 소읍을 배경으로 쓰는건 좀 무딘감각이다.
이런 배경에서는 자연히 노인의 느릿한 시선만이 잡힌다.
그게 영화가 축축 늘어지고 생기가 증발해 버린 이유다.
관객의 호기심과 트렌드에 맞출려면 새로 뜨는 신대륙 아비규환의 시장통 같은데를 뒤져야한다.
초현대와 봉건이 짬뽕으로 뒤 섞인 상하이 같은데가 킬러 스릴러 영화의 배경으로 적당할것 같다.
그런 혼돈의 공간이라야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 같이 서사에 저절로 긴장감이 당겨진다.
그러면 너무 미션임파서블 같은 영화가 될까?
아뭏든 스릴 넘치는 긴장감이 없는 킬러 영화라니, 좀 황당하다.
영화에 넘쳐나는 미국-유럽 일색의 제1세계적 세계관도 시대변화에 무감각한 한심함의 반증이다
한마디로 미국적 또는 유럽적인 자기연민과 탐미의 하품이 The American의 일관한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