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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소설 미나의 공간 --- 1. 대한민국 2% 아이들만 다니는 서울 강남의 여자고등학교  2. 그런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3. 타워펠리스 같은 최고급 아파트의 밀폐된 실내공간  4. 청담동에 있는 최고급 노래방

좀 으스스한 공간이다.
차갑고 메마르다.
그런 공간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 같은건 끼어들 틈이 없다.
물리적 진입장벽을 차곡차곡 쌓았으니, 심리적 교감이야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소설 미나는 그런 불통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죽는건 미나고 죽이는건 수정이다.
수정이 죽인 미나는 소통의 끈을 마지막에는 붙잡고 싶었을까?
친구 지예가 뛰어내려 자살하자 미나는 시험을 포기한다.
성공적인 계급재생산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학교 밖으로 나간다.
수정은 그런 미나가 또 다른 차별화된 계급 재생산의 통로를 따라간 걸로 보았을까?
그게 더욱 위선적인 가증스러움으로 보일까?
아니면 지예의 죽음으로 체제의 외부로 돌아선 미나를 체제의 대리자로 살해했을까?

수정이 죽인건 미나다.
미나는 체제의 외부일수도 있고, 체제의 더욱 강고한 변신일 수도 있다.
수정은 그 둘 어느것에도 넘어설 수 없는 소통의 벽을 절감한다.
그런 절벽에 몸서리친다.

수정의 살인은 체제의 내부와 외부 그 어느것에도 교감의 통로가 없다는 절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소설 미나는 절망의 이야기다.
수정이 죽인 미나는 좁게는 당대 체제의 수호자들이다.
넓게는 당대의 우리 모두가 결국 미나와 다를 바 없다는 묵시록이다.
통로는 없다.
탈출구도 없다.
미나가 대안이 아니므로 우리는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는 절망이다.
그걸 수정은 미나를 살해하는 걸로 말한다.

그러므로 살해당한 미나는 우리 자신이고, 살해자 수정은 현실에 절망한 청춘들이다.

인터넷을 뒤져 작가 김사과를 검색해 보았다.
84년 생이면 아직 30도 못 넘겼다.
외국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한예종 영상학부에 갔다가, 최종적으로는 문창과를 졸업했다.
김사과가 문제적이라는건 희망에 대해서 눈꼼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거다.
그는 그걸 극단으로 밀어붙여 말하고 있다.

소설 미나는 '제발 내 말좀 들어주세요'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그걸 들을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비극적 묵시록 같은 소설이다.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