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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시오노 나나미



한치의 틈도 없는 젠틀맨이 빈틈없는 몸을 내던지면 어떻게 변할까?
나는 그 낙차를 즐기고 싶다.

시오노의 도발적 요부성을 그대로 들어내는 말이다.
시오는 일본에서 태어나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곳에서 지중해 관련 역사물을 엄청써대는 작가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로마인 이야기'가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매년 한권씩 출간된 작품이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시오노의 남성적 마초성에 질린 기억이 있다.
이런 느낌은 시오노의 다른책들에서도 여전했다.
그녀의 다른책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르네상스의 여성들' 같은 책들을 교양삼아서 읽어보려 시도했다.
그녀의 가부장적 마초성에 질려서 중간에 내던진 기억이 있다.
그런 시오노에게서 이런 관능적인 여성적 측면이 있다니 놀랍다.
엄숙한 영국 신사를 무너뜨리고 싶다!

현실에 단단하게 결착되어 있는 J가 연상되어 낄낄거리고 웃었다.
(이런식의 장난이 오해를 불러오고, 그 오해는 또 다른 이해를 만든다.
현실은 이렇게 오해를 기반으로 이해를 만들어 간다.
그런점에서 우리의 일상이란 오해와 이해의 뒤범벅을 탈피할수 없다.
몸으로 살아 내는 걸 통해서 현실을 설득하는 방법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김영민의 어법을 흉내냄)

밖을 바꿈으로서 속을 바꿔라.
남자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사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남자가 바뀐다.
누군가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자기 음성을 확인하면서 남자들은 바뀐다.
진실한 사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남자의 가슴속에 있다는 건 거짓이다.

시오노가 갑자기 살가운 여자로 느켜지는 대목이다.
니체가 말하듯이 진지한 남자들은 무언가 무겁고 깊은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철저한 현실주의자들인 여자들은 그런 형이상학적 진리란 애초부터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단지 표면의 무쌍한 변화만이 진실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안다.
그게 그녀들이 가볍게 움직이는 이유다.
화장에 공을 들이고, 작은 액세서리 하나에도 민감한 이유다.
무거운 진리를 추구하는 남자들은 그런점에서 여자들 보다 확실히 아둔하다.

아이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다.

시오노의 세대간 갈등에 대처하는 태도다.
젊은이들에게 아부하지도 말라.
그렇다고 그들에게 기성의 태도를 강제할려고 억지스럽게 몰아부치지도 말라는 거다.
어짜피 젊은 세대는 노인 세대와의 대결을 통해서 진정으로 성장한다.
차라리 지그시 지켜보는게 올바른 세대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억지로 강제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기성의 가치에 짖눌려 숨이 막힌다.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지켜봐 줄 여유가 어른들에게 없다는게 문제다.

자네는 남자들을 경탄하게 할 작품을 쓸 줄 아는 몇 안되는 작가가 될 것이다.

시오노가 작가로 데뷔하긴 전 시오노의 습작을 읽은 어느 잡지사의 편집장이 시오노에게 한 거짓말이란다.
시오노는 이 거짓말에 고무되었다.
거짓말인줄 빤히 알면서도 그 말속에 1%의 진실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 칭찬 때문에, 작가에 대한 별다른 열망도 없었던 그녀는 원고쓰는 일을 쓰레기통에 처박지 않았다.
그 칭찬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녀는 열심히 노력했다.
동아시아 삼국에서 지중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거의 그녀에게 의존한단다.
그 만큼 베스트셀러 대중작가로서 그녀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런 그녀가 이런 작은 칭찬에 기대어 작가로서 그녀의 삶을 지탱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왜 그녀가 그렇게 가부장적으로 마초적인 이야기들을 구사하는지 그 배경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들을 경탄하게 할 글을 썼던거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남자들을 경탄시킬 글을 쓰는거였다.
단순하게 말해서 시오노는 그 편집장 남자를 향해서 글을 쓴거다.

이제야 시오노의 가부장성이 해명되었다.
남자에 매달린 시오노가, '남자들에게'란 그녀의 수필집에 생생히 살아있다.
남자들을 향해서 쓴 시오노의 무거운 역사이야기 글들에서 그녀의 여성성을 읽어 내기는 불가능하다.
남성들의 가부장적 마초성을 그녀는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남자들을 만족시킨다.

앙큼하다는 말이 이 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경우가 없을것 같다.
그게 가벼운 그녀의 수필집에서 투명하게 노출된다.
어느정도, 작가로서 현실적인 성공도 이루었고.
남성 독자들을 만족 시켜야하는 무거운 역사이야기도 아니고.
그러니 그녀의 일상적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역시 진리는 얇고 넓은 표면의 현란한 변화에 있다.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일랑 지우고 여자들 처럼 날마다 매무새를 꾸미고 살자!
그리고 수다좀 떨자!
근데 수다 떨 사람이 없어서 좀 우울하다.
아무나 붙잡고 술먹고 놀아야지!

엘리트 지식인 남자들이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
아수라의 삶을 통과해 본 경험이 없다.

결과로, 승부처에 대한 감수성이 둔하다.
아예 승부를 걸 줄도 모른다.
정해진 궤도 외부를 알지 못한다.
스스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은 논평을 통해서 한다.
그래서 돈이나 권력의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