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당구장과 술집을 오가며 밤새워 놀고 아침녁에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한국남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주체를 할 줄 모른다는거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어느정도 경제적 안정이 생기면, 술이나 도박 같은 놀이에 그냥 빨려들어간다.
그런 지리멸렬한 삶은, 자기욕망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어른이 된 뒤늦은 대가다.
어린시절 부터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면 나머지 문제는 그냥 저절로 다 해결된다고 배운다.
그래서 다른것 생각하지 않고 사회가 파 놓은 홈을 그저 쭉 따라가면 내 인생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내 인생은 어떤 것인가?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때 나는 행복한가?
무엇을 어떻게 할 때 일에 대한 집중도는 최고조에 달하고, 생산성은 높은가?
따위와 같은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인생에 대한 고민조차 없이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는다.
그래서 아는거라곤 주류적 사회가 파 놓은 뻔한 길 밖에 모른다.
그것의 외부를 상상할 줄도 모르고, 그걸 상상하면 그냥 그걸로 인생 끝장이라는 위협에 항상 노출된 억압된 삶을 산다.
그래서 어느정도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그런 억압된 욕구에 대한 잠금장치가 풀린다.
이때 남자들이 가장 손쉽게 그런 억압을 털어내는 통로가 술이나 도박과 같은것들이다.
그런 도박 중에서 가장 손쉽고 비용이 덜 드는 것이 당구다.
그래서 당구장에 가면 고객의 거의 전부가 중년의 남자들이다.
어제간 당구장도 전형적인 그런 모습이었다.
300평이 넘는 당구장이 거의 검정색 계통으로 통일된 복장을 한 아저씨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전에는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어제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왜 이 남자들은 한결 같이 검정색 작업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을까?
왜 이 많은 남자들 중에서 빨간색이나, 노랑색 같은 밝고 튀는 원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은 없을까?
같은 느닷없는 질문이 생겼다.
그러면서 똑 같은 모습을 한 나에게 실소가 나왔다.
지난 세월동안 그들과 똑 같이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보였다.
그런데 아침녁에 집에 돌아와서 지나간 신문을 뒤적이다가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한겨레신문 1월 3일 ESC라는 섹션에 실린 '죽기전에 꿈을 현실로, 2008년 새해를 맞는 50인의 50가지 선택'이라는 신념특집 비슷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실린 50인의 50가지 신년 결심내용이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각자 개성이 있었고, 나름의 순수한 자기 욕망의 표출이었다.
그 중 재미있는 몇개만 소개하면 이렇다.
배에 왕자 새기고 누드비치에 달려가고 싶다.-----(조진국/드라마-시나리오 작가)
일본어를 배워 일본에서 연애를----(이혜영/영화감독)
돈 안되는 공부를 제대로 한번 ----(조광희/변호사)
직접 찍고 쓴 포토에세이를 낼것 ----(박상우/소설가)
인용문만으로 책을 쓰는 거야----(진용주/디자인하우스 편집장). 새로 안 사실인데, 발터 벤야민이 이걸 시도했다가 실패했단다. 어디선가 쉼표나 뛰어쓰기가 없는 책 비슷한게 있다는 예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책은 어떤 식으로든 독해가 가능하단다. 만약 인용문 만으로 쓴 책이 만들어 진다면 아마 그런책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레게와 전주대사습놀이를 함께----(김반장/솔그룹'윈디시티'). 축제기획할 기회있으면 써먹어야겠다.
축구팀에 가입할 소설가 급구!----(이기호/소설가)
카메라없이 여행을 ----(민병헌/사진가)
다른 것들도 모두 재미있고, 신선하다.
이들은 나와 같이 자기주체를 제대로 못해서 당구장과 술집을 오가며 지리멸렬하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괜히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나도 최근 몇년동안 한번도 해보지 않은 새해결심을 하기로 했다.
지금 1월이 다가는데 너무 늦지 않았냐규?
내년에 할걸 1년 땡겨서 한거다.
그리고 신년구상을 꼭 새해정초에 해야하냐!
아무 때나하면 그게 그거지.
그럼 당구장 술집 출입은 때려치냐고?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내가 주체적으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좀 늦었지만 신년구상을 했으니 그것으로 재미있게 한번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