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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누가 훔쳤나? - 도둑은 누구인가?

 

지난 봄에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동료 직원 p가 밭을 일궜다.

그 땅은 버려져 있었고, 누구도 그곳에서 작물이 자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평 남짓한 그 땅을 점심 시간마다 p는 호미를 들고 갈았다.

돌도 골라내고, 고랑도 만들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었다.

첨엔 시들하던 고추 오이 토마토 가지 등이 이내 실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봄날 어디에도 p의 성실한 노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구석진 시골 학교에 버려진 땅은 지천이고, 그 한모퉁이를 돌보는 일이 무슨 대단한 일일까?

그럼에도, 잠깐씩이지만 매일 매일 10-20 분의 노동을 p는 빠트리지 않고 지속했다.

날이 더워지면서 일조량이 늘어나고, 결실이 맺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오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참외가 열렸다.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 참외는 잘도 익어 갔다.

그걸 어제 p 몰래 따버렸다.

더불어 몇개의 토마토도 함께 거뒀다.

그걸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우린 훔친 공범이라고 뻥을 쳤다.

물론, 껄렁한 장난으로 서로 시시덕 거린일에 불과하다.

사소한 장난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p에게 들키면 물론 약간의 변명이 필요하다.

그 알라바이를 위해서 여기에 증거를 남긴다.

거짓을 말할 때는, 또는 무언가를 훔칠 때는 그걸 알아채릴 수 있는 증거를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그게 장난이었어.라는 변명이 통한다.

 

cf)  김영민의 동무론에 따르면, 동무는 서로 같은 점이 없어야 한다.

뜻이 같은 동지나 말이 필요 없는 친구라는 단어를 대체하는 의미로 동무라는 용어를 주장한다.

동지나 친구가 자본주의적 관계에, 다시 말해서 상품교환체계에 자유롭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대안적 관계로서 동무()관계 - 같은게 없는 관계 - 서로 다른 관계를 주장한다.

그걸 '동무론'이라는 책에서 장황하게 쓰고 있는데, p는 내게 동무론의 동무에 해당하는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1. p의 노동이 상품의 생산과 그것의 교환이라는 자본주의적 일반 관계에서 빗겨있다.

2. 매일 먼저 몸을 끄-을-고 앞서 나간다.

3. 동지/적 - 남자/여자 - 상인/소비자 - 자본가/노동자 등의 상식적 격자 구조로 포섭되지 않는다.

 

p는 위에서 말한 특징들로 고유하고 독특한 무뉘를 가지고 있다.

인문(人紋.무늬 문)학이 사람살이의 무뉘에 대한 공부라고 할때, p는 독특한 자기무뉘를 일군 인문학도다.

그런점에서 p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동무()다.

그걸 말하고 싶어서 김영민의 '동무론'에서 중요한 대목인 '어떻게, 교우론은 미래학인가?'라는 페이지에 p가 기른 토마토와 참외를 올려 놓고 사진을 찍었다.

말하자면 나는 p에게서 p의 노동 산물인 토마토와 참외를 훔쳤고, 함께 동무론이라는 개념을 훔쳐왔다.

한번에 세가지를 훔쳤으니, 용서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많이 가져왔다.

그럼에도 p에게 용서를 기대하는건, 결국 p에게 훔친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말이 안되나?

많이 훔쳤으되, 별로 훔친게 없다는게.

 

다시 김영민으로 돌아오면, 세속이란 인과적으로 설명되지도 않고, 인과관계가 뒤집혀 또는 뒤 섞여 있기 일쑤고, 더 나아가 내가 한일을 원천적으로 알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쫌 쉬운 사례를 동원하자면, 안과 밖이 서로 연결 되어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해 봐라.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인가?

안이면서 밖이고, 밖이면서 안이다.

안과 밖이 서로 연결 되어 있다.

그러면 이제 훔친게 나인지 p인지 조차도 불분명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 용서를 구할 일도 없다.

 

 

어휴---우. 겨우 겨우 억지로 말을 만들었다.

사기는 그냥 쳐지는게 아니다.

다 나름으로 피땀이 베어 있어야 그럴듯한 사기가 된다.

비인과의 인과를 또는 억지 논리를 뒷 받침할 수 있는 건 세속을 뚫어낼 만한 끊임없는 수행성 밖에 없다.

내가 아는 어떤 과학 선생은 학생들이 머리가 길면 수업중에 졸린다고 학생들을 혼냈다.

쫌 비틀자면, 학교라는 세계에서 과학선생들이 가장 비과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비과학적 억지를 계속 지껄이면, '긴머리 - 졸리움'이라는 인과가 시나브로 현실에서 작동한다.

세상에 반복적 수행성 만큼 효과적인 인과관계의 증명은 없어 보인다.

너무 황당한 논리인가?

그럼 약간 톤다운하자면,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암튼 참외는 잘 익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