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정원(황석영)' 그리고 '소년이온다(한강)'를 겹쳐 읽으면 어떨까? 요령껏 편집해서 두권을 합본 책 한권으로 만들면, 어떨까? 안되까?
10년도 더 전에, 아직 한창이던, 물론 지금은 늙어서 골골하지만, 팔팔해서 그리고 아직 피가 식지 않아서 뜨겁던, 그런 시절의 영화임. 수배를 피해 도망자의 신세인 현우의 이념적 시대적 정당성 보다는, 갈뫼라는 고립된 - 외진 - 단절 공간에서의 사랑에 열중하는 윤희가, 더욱 정당해 보이는 수상쩍은 감수성이 막 자각되던, 뜨거운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의 전조로 몇번의 태풍이 몰아치는 이치에 대한, 실감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던 영화.
여전히,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짐을 당하는 느낌의 광주의 이야기를, 비이이잉 에둘러서, 서너발자국 떨어져서,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 그래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는 이영화의 원작인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의 다른 판본임. 한강이 자신의 문학적 성취는 한국문단이라는 환경에서 나고-자란 산물이라고 겸양을 할때, 그 증거의 하나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임.
2.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아름다운게 사랑이고 생명이라는 처연한 진술. 아무리 폭압적인 권력과 군대라도 그것만은 당해낼 수 없다는 이야기. 윤희의 죽음과 현우의 옥살이를 결국 - 뚫고 나온 싱싱한 생명 은결이. 역사적 상처의 흔적이라곤 눈꼼 만큼도 없는 순수하고 발랄한 은결이는 어떤 음악을 연주할까? 그게 한강의 시적 글이 아닐까?라고, 상상하는건 너무 자의적일까? 교사였던 그리고 소설가가 된, 아버지 한승원이 숨겨두었던 광주의 사진자료들을 몰래몰래 보면서, 순수하고 발랄했던 한강은, 항상 진지한 사색에 물든 시인이자 소설가로 나아갔으니, 그리 자의적인 생각은 아닌것도 같고.
3. 친구-후배-선배들이 모두 잡혀가고 - 끌려가고 - 고문당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현우는, 둘만의 궁벽한 비밀의 공간, 갈뫼라는 오래된 정원, 사실상 둘만의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윤희에게 통보하고, 윤희는 현우를 붙잡지 - 말리지 않고. 다만, 비오는 날 떠나는 현우가 탄 버스의 뒤통수에 대고 '밥줘-재워줘-빨래해줘-사랑해줘' 근데 니가 왜가? 라고 울면서 통곡하고.
아마도 누구보다 더, 윤희는 현우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란걸 선명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런 아픈 시대를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황석영 처럼 서너발자국 떨어진 시선으로 그리고 있음. 사태에 직입하지 않고 비이이이잉 에둘러가는, 당시 풍경의 조각조각 배경들을 하나씩 하나씩 따로 그려서, 사태에 직입하는 서술이 빠지기 쉬운 자아라는 주체의 편향적 왜곡을 최대한으로 억제하는데, 이걸 왜곡이라고 말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그럼 비됴 보여주까?
4. 결국, 꼰대기질이 발동해서 말하는데, 황석영의 '오래된정원' 한강의 '소년이온다'는, 두권을 함께 읽어야 되는, 그래야 가독성이 열배는 제고되는, 한그루 두가지의 텍스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