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바다에 나갔다가 그냥 돌아온다.
파도가 너무 크고 거칠다.
몇번 깊은 바다로 나갈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한다.
마크가 이런 파도에 초보자는 쉬는게 좋다고 희롱한다.
하는 수 없이 나무 그늘에 앉아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어려웠던 책인데 여기서는 술술 읽힌다.
김영민의 말을 두 문장으로 요약한다.
'공부란 좋은 몸을 만드는거다. 좋은 몸이란 행동하는 몸이다.'
저녁에 밥을 짖는다.
여남은 명의 젊은 일본사람들이 옆에서 고기를 굽는다.
그중 제일 덩치큰 젊은이가 우리를 초대한다.
거기서 음식이며 술을 실컷 얻어 먹는다.
( 순박한 일본 청년 농부들 )
직업을 물으니 모두 농부란다.
일본에는 이런 젊은이들이 농부란게 신기하다.
8월 6일
어제 저녁에 만난 세이가 차를 가져와서 미야자끼 시내에 간다.
에이이원 몰이라는 큰 백화점 비슷한 곳에 가서 영화를 본다.
한국에서 본 인셒션이다.
모두가 영화에 퍽이 갔다.
나는 데면데면 하다.
마크와 티나가 스시를 먹고 싶단다.
이 놈들은 스시에 대한 환상 비슷한게 있다.
눈꼼만한 스시 한판에 80,000원이다.
가격을 보더니 그냥 싼 치킨남방이나 먹잔다.
실망한 눈치가 역력하다.
할 수 없이 내가 돈을 치루기로 하고 스시한판을 시켜 먹는다.
마크의 말 : Thanks, Father!
저녁에 농부인 세이가 역시 농부인 세이의 아버지 집에 초대를 했다.
허리가 굽은 세이의 어머니가 마당에 비닐 멍석을 깔아놓고 요리를 하고 있다.
67살이라는데 허리가 많이 굽었다.
삼결살, 오리고기, 소고기, 소라, 오징어, 얇게 썬 호박 등을 숯불 화덕에 구워먹는다.
맥주, 일본소주, 마크가 산 와인, 내가 산 막걸리와 진로소주를 마신다.
( 세이 어머니가 준비한 브라이 재료 )
허름한 세이 아버지 시골집 마당에 잔치가 벌어졌다.
어제 만났던 세이의 친구들, 우리 셋, 세이의 부모님, 세이의 형제들, 세이의 아내와 아이들 모두 깜깜한 밤하늘 아래서 떠들고 웃고 논다.
세이의 아버지는 아까부터 벌써 취했다.
한국말로 '소주 주세요. 막걸리 주세요.'를 연발한다.
급기야는 '담배 주세요'라고 말한다.
세이의 딸, 그러니까 그의 손녀가, 그리고 그의 아내와 딸들이 담배를 못피우게 막느라 바쁘다.
그걸 뚫고 세이의 아버지는 담배를 한대 피운다.
한쪽 구석에서 마크에게 담배를 얻어 연신 만족한 얼굴로 헤벌쭉하다.
우리도 '삐루 꾸다사이. 소주 꾸다사이.' 하다가 같이 취한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갑빠'다
갑빠는 닭에서 살을 발라내고 남는 어깨부분 뼈다.
대부분 버리는데, 이 집은 그걸 싸게 사서 그냥 소금만 넣고 큰 솥에 끓인다.
그걸 큰 바께스에 내 왔다.
그게 제일 먼저 떨어졌다.
이집만의 특별요리다.
( 갑빠 : 그냥 버리는 닭 어깨뼈를 모아서 소금만 치고 마구마구 삶은 요리)
밤 늦게 텐트로 돌아와서 골아 떨어졌다.
8월 7일
파도가 더 거칠어졌다.
바다에 나갈 엄두를 못낸다.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이제 거의 책을 다 읽었다.
서핑보다 몇년간 끙끙대던 책을 거의 다 읽었다는 성취감이 크다.
저녁에 세이가 밴드연습장에 초대한다.
세이는 미야자끼에서 활동하는 헤비메탈 밴드 'arising sun'의 키타리스트다.
그의 자랑에 따르면 자기 밴드는 미야자끼에서는 상당히 알아준단다.
연습장은 깊은 시골 농장의 작업장 한 구석에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두시간 가까이, 옆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밴드연습을 구경한다.
( arising sun 의 드러머 : 땀을 뻘뻘 흘리며 드럼치는 모습이 너무 너무 매력적이다 )
나에게는 드럼머의 드럼연주 모습이 그리고 그 소리가 가장 좋다.
밴드 연습이 끝나고 식당으로 이동해서 우동을 먹는다.
마크가 일본에 와서 아직 사케를 마셔보지 않았다고 투털거린다.
사케는 한국에서도 실컷 마실수 있다고 막는다.
아뭏든 서양놈들의, 특히 영국문화권 놈들의 일본에 대한 환상은 때때로 터무니 없다.
닌자, 사무라이, 스시, 사케, 게이샤, 기모노 같은 것들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냄새는 때때로 역겹다.
8월 8일
캠핑장에 돌아와 텐트를 걷고 짐을 꾸려 다까나베 역으로 간다.
자정 7분에 다까나베를 출발한 기차는 아침 6시 경에 후쿠오까 하까다역에 도착한다.
다시 후쿠오까 국제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예정된 배편이 12시 30분이다.
그걸 9시로 바꾼다.
발권하는 웃음이 예쁜 일본아가씨한테 수작을 걸다가 마크에게 들킨다.
마크의 말 : can not help trying to tempt, so beautiful(그럴만하다).
12시경에 부산에 도착한다.
해남으로 오는 길에 나는 김치찌게를 마크와 티나는 비빕밥을 먹는다.
한국에 오기전 그들은 비빕밥이 제일 맛있는 한국음식이라고 귀가 닳도록 듣는다.
생활속의 매체들은 어느새 무의식으로 침전한다.
그리고 그게 인간의 신체를 조직하고 양심을 조직하고, 입맛을 결정한다.
그걸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은 부단한 공부고, 그걸로 몸을 변화시키는 거다.
사회적 무의식의 통제를 성찰할 줄 알아야 비로소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이게 마지막날 읽은 김영민의 책 '동무론'의 내용중 한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