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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버트란트 러셀의 생애를 만화로 그렸다.

1. 이성과 광기는 어떻게 관계를 맺나?

합리적 이성과 광기는 가장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다.
광기는 비합리성 그 자체다.
미친놈의 행위란 세상의 상식적 법칙에서 벗어난 행태들을 말한다.
근데 이 책에서는 그런 광기와 이성적 합리성이 가장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러셀은 극단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할머니에게서 양육되었다.
할머니의 양육은 러셀이 극단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기반이 되었다.
근데 어찌보면 이런 철저한 합리성이 러셀로 하여금 광기에 빠져드는 입구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가계 대대로 내려오는 광기 -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피에도 흐르는 광기를 러셀은 합리성을 추구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으로 러셀의 생애는 합리성에 대한 광적인 추구를 통해서 광기에 의해서 실패한 삶을 완성한다.
한치의 모순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게 논리적인 수학을 정립하고자한 시도가 결국에 실패했다.

그게 이 책이 말하는 요점이다.
그건 근대가 낳은 최고의 수학자들인 프레게 칸토어 괴델 등의 삶을 해석하는데도 빈틈없이 적용된다.
프레게는 미쳤고, 괴델은 우울증에 걸렸고, 슐릭은 나치광신도에게 총격에 숨졌고, 비트겐슈타인은 자살했단다.
이 대목에서는 맑시즘을 과학화하려고 시도한 알튀세가 평생의 반려자인 마눌을 살해하는 것으로 인생을 종지부하는 어처구니 없음이 생각났다.
어쩌면 알튀세는 인문사회과학에서 근대적 합리성을 추구한 마지막 근대인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합리적 이성이 믿을만한게 아니라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의존해야 하나? 
 

2. 근대적 합리성을 대체하는 '실천-몸'이라는 개념

괴델이 증명한 것은 '체계 안에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모순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 이란다.
흔히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러셀이 그토록 추구했던 완벽한 합리적 이론 또는 논리학이란 없다,는 것을 괴델이 최종적으로 증명했단다.
일종의 근대적 합리성 또는 근대의 기획이라 불리는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세계설계'라는게 불가능다,는 설명이다.
근대의 기획이 괴델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붕괴되었다,는 말 일 게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은건 무엇일까?
세계가 합리적 이성으로 모두 설명될 수 없다는걸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다.
순간 순간들의 상황에서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용하는 것 이다.
그걸 다른말로 한다면 아마도 실천이론 이겠고, 몸으로 현실을 내파해야 한다,는 말 이다.
과학적 사고로 세상의 이치를 아무리 제 봐야 아무것도 없는 허무함이다,에 다름 아닐 것 이다.
그렇다고 과학적 이성, 합리적 이성을 내 팽개치자는 말은 아닐 것 이다.
아무리 합리적 이성으로 세속의 이치를 따져봐도, 인간들의 선택과 열정과 사랑과 감성의 영역은 여전하다,는 말 이다.
나에게는 이게 세상에 대한 겸손과 세상에 대한 용감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말로 들린다.

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없으니 막가자는게 아니라, 이 세상은 인간들의 몸으로 틈을 만들고 실천해 가면서 살아 내야 하고, 순간 순간들에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 일 게다.

그나저나 합리적 근대성을 극단까지 밀어부쳤던 러셀은 그것으로 자신의 삶의 비극을 완성했다.
인간의 비극은 '비극을 완성함으로서만 삶의 위대함을 낳는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또 하나는 만화로 이런 장대한 서사를 만들다니, 만화가 새롭게 보인다.

스토리 구성, 서사적 허구, 수학적 이론을 평이하게 만들어 그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팀웤이 대단하다. 
이런 서사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평이하게 만드는 건 그 사회의 인문학적 능력이다.
우리도 이런 서사를 만화로 만든다면, 그건 우리 사회의 풍요함의 반증일 것이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미국사회에 대한 욕찌기가 이런 대목에서는 말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