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문장은 태반이 비문이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구어체로 갈겨댄다. 그런식으로 참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개인적으로 고미숙을 백낙청과 비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백낙청은 한국사회의 무지몽매한 봉건성에 맞서, 근대적 합리성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게 민족문학론이라는 창비의 바탕을 이루는 정신이다. 백낙청의 민족론이 말하자면 한국사회 진보의 가장 깊은 뿌리라고 말해야 한다. 그게 백낙청으로 대표되는 창비류의 문장들이 주어-목적어-동사로 흠결 하나 없이 완벽한 이유다. 거기서 백낙청의 진중하고 견결한 힘이 나온다. 고미숙의 문체을 이런 백낙청의 문체에 비교하면 가벼워서 금방 날아 다닌다. 거의 만화에서나 쓰일 것 같은 비문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게 고미숙이 지난 10여년 동안 거의 빠짐 없이 매년 한권씩 책을 쏟아내는 힘이다. 고미숙은 그걸로 갑빠에 잔뜩 힘을 넣고 있지만, 사실은 달달 떨고 있는 백낙청들을 살살 달랜다. 이제 민족론 말고 다른 말좀 하자. 너 지금까지 고생했다. 그거 나도 다 안다. 근대적 문제설정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세상이 변했으니, 쫌 다르게 세상을 보자고 말한다. 한번 봐라.
"부자되세요~!" --- 이게 우리 시대 최고의 덕담이다. 꼬마들부터 대통령까지. 백화점과 은행, 서점까지 어디를 가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마치 한국인은 부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듯이 말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돈의 '마력'은 곳곳에 편재한다.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옴니프레젠트(Omnipresent)!
이번 책 "돈의 달인 --- "의 첫페이지 첫단락만 따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비문을 맘대로 부려가면서, 쉽게 쉽게 자기말을 쏟아내는 고미숙이 부럽다. 문체가 신체라면, 한국사회에서 오십대 이상의 노털들은 절대로 이런 문체를 구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자기 신체를 엄격한 근대적 규범에 맞추어 단련시켜 왔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근간을 둔 직선적이고 절도있는 규범으로부터 한번도 자유롭게 살아본 경험이 없다. 그곳에서 비켜간 유려한 곡선적 흐름이 고미숙이 새로운 혁명성을 담보한 곳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여성성, 대학제도로 부터의 이탈, 가족을 대체하는 코뮨주의'가 고미숙이 백낙청의 근대성을 뛰어 넘어간 풍경이다.
그런점에서, 이번 책도 고미숙의 또 하나의 성공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