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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산문집

2005. 09. 23.



 

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산문집)



“너 커서 뭐 해 먹을래”

“김치”

“그런 것 말고”

“그럼 된장국, 감자, 파 ----”

“아니, 그런 것 말고라니까”

“그럼, 멸치”


조카에게 물어본 것은 반찬이 아니라 장래 희망이었다

내가 못내 가슴 아팠던 것은 조카의 대답이 그 또래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햄버거 같은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고향을 떠나 어렵게 살고 있는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맘이 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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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성구가 씨름 선수가 되었다니 기쁘다.
삼촌은 네가 어두운 가족사를 극복하고 꼭 휼륭한 김치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석 연휴를 술로 떡칠하면서 짬짬이 읽은 책이다.

책 속에 새겨진 가난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왜 똑같은 가난이 그는 풍성하게 하고, 나는 빈약하게 만들었을까?


가난으로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나는 안다 .

가난이 사람을 누추하게 만들고 그를 소모시켜 폐기한다는 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가난으로 가족들을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온몸으로 가난의 처연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그 순간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슬프기 보다는 가난이라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어머니와 나를 해방시켜주는 것 같아서 홀가분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에게는 부정하고 싶은 존재였다.


나는 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내 과거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가난하다면 나도 함민복 처럼 가난을 타인에 대한 풍성한 이해의 바탕으로 만들었을까?

나의 부가 나를 오히려 강팍하게 만들었을까 ?


결국 그런 생각에 까지 도달하였다.


가난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과 평화롭게 화해한 사람의 풍성함과,

그것에 짖눌려 부정하고자 하는 사람의 추악함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나의 진짜 피폐함을 들여다 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