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ire" / "Mulitude"의 후유증
실없이, 지난 여름과 가을을 몽탕 털어서 네그리를 쫒아 다녔다.
새로운 신흥종교에 빨려든 광신도 마냥 그를 읽어내는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헛헛함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텍스트가 주는 지적 허영심에 대한 위안이다.
영어로 쓰여진 텍스트란 선이 가늘고 긴 세련된 도시의 여자다.
영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촌놈을 도시의 부루주아적 지식인으로 꾸미는 장치다.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란 없듯이,
그런 허영을 채움으로서 부허한 실존이 선명해진다.
더불어, 네그리를 현실에 충실하게 읽을 길이 얼핏 보인다.
삶의 풍경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공통으로 존재한다.
공통으로 생산한다.
공통으로 사유한다.
살아간다는 것의 공통성이 어느 시대보다 견결하다.
이게 그가 확인한거다.
그러나 현실은 더 많이 갈라지고 찢겨져 있어 보인다.
차이와 차별은 넘쳐나고,
그것으로 상처와 고통은 어디에서나 범람한다.
그렇다면 네그리가 본 공통성이란 허구인가?
네트워크적 연결이란 중립적인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악으로 기능할 뿐이다.
네트워크는 현실을 살아가는 피할 수 없는 존재조건이다.
네크워크적 존재, 존재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삶을 기획해야한다.
사랑도, 혁명도 그 너머에 있지 않다.
200년 전에 맑스가 공장제 생산시스템을 핵심적 존재조건으로 보았다면,
현재의 네그리는 지식사회에 기반한 네트워크적 생산시스템을 핵심적 존재조건으로 설정한다.
삶을 규정하는 물질적 토대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네그리는 막스를 충실히 계승한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토대가 변했다는 점에서 네그리는 맑스를 넘어선다.
맑스의 공장제 생산시스템의 자리에 네그리는 네트워크적 삶이라는 말을 대입한다.
결국, 네트워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네트워크란 언어이므로, 언어가 무슨일을 하는가의 문제다.
언어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식이므로 지식이 무슨일을 하는가의 문제다.
진정으로, 네트워크 언어 또는 지식은 이질적 타자들을 소통시키는가?
그 안에서 인간은 차이를 넘어 서로 손잡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가?
최소한, 나는 더 그런것 같다.
실없이, 지난 여름과 가을을 몽탕 털어서 네그리를 쫒아 다녔다.
새로운 신흥종교에 빨려든 광신도 마냥 그를 읽어내는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헛헛함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다른 하나는 텍스트가 주는 지적 허영심에 대한 위안이다.
영어로 쓰여진 텍스트란 선이 가늘고 긴 세련된 도시의 여자다.
영어로 사유한다는 것은 촌놈을 도시의 부루주아적 지식인으로 꾸미는 장치다.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란 없듯이,
그런 허영을 채움으로서 부허한 실존이 선명해진다.
더불어, 네그리를 현실에 충실하게 읽을 길이 얼핏 보인다.
삶의 풍경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모두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공통으로 존재한다.
공통으로 생산한다.
공통으로 사유한다.
살아간다는 것의 공통성이 어느 시대보다 견결하다.
이게 그가 확인한거다.
그러나 현실은 더 많이 갈라지고 찢겨져 있어 보인다.
차이와 차별은 넘쳐나고,
그것으로 상처와 고통은 어디에서나 범람한다.
그렇다면 네그리가 본 공통성이란 허구인가?
네트워크적 연결이란 중립적인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악으로 기능할 뿐이다.
네트워크는 현실을 살아가는 피할 수 없는 존재조건이다.
네크워크적 존재, 존재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삶을 기획해야한다.
사랑도, 혁명도 그 너머에 있지 않다.
200년 전에 맑스가 공장제 생산시스템을 핵심적 존재조건으로 보았다면,
현재의 네그리는 지식사회에 기반한 네트워크적 생산시스템을 핵심적 존재조건으로 설정한다.
삶을 규정하는 물질적 토대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네그리는 막스를 충실히 계승한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토대가 변했다는 점에서 네그리는 맑스를 넘어선다.
맑스의 공장제 생산시스템의 자리에 네그리는 네트워크적 삶이라는 말을 대입한다.
결국, 네트워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의 문제다.
네트워크란 언어이므로, 언어가 무슨일을 하는가의 문제다.
언어란 사회적으로 구성된 지식이므로 지식이 무슨일을 하는가의 문제다.
진정으로, 네트워크 언어 또는 지식은 이질적 타자들을 소통시키는가?
그 안에서 인간은 차이를 넘어 서로 손잡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가?
최소한, 나는 더 그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