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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남아프리카공화국 - 소웨토(2012.01.26)

1. 조버그.
전날 남아공에 도착한 여행단과 합류했다.
주로 해남지역에 거주하는 직장인들과 그 가족들로 여행단이 꾸려졌다.
주요 일정은 조버그 시내와 소웨토지역 투어다.
현지인이 투어가이드를 했고, 영어 실력이 탁월한 정선생이 통역을 했다.
시내 투어는 따분했다.
울창한 밀림이었던 조버그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유럽과 세계각지에서 황금을 쫒아 몰려든 사람들로 도시가 시작되었다.
한문장으로 요약한 조버그시내 투어의 내용이다.

< 조버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모습 >

< 조버그 제일 중심지인 만델라 광장 : 중국인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다 >

2. 소웨토
조버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있는 흑인 밀집거주지역이다.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시절 흑인저항운동의 중심지였고, 에이즈 만연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 시절 만델라와 투투주교가 서로 이웃하면서 함께 활동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둘이 한꺼번에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현지인들은 동네의 한거리에서 두명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지역이라고 자랑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90년대 까지 유지된 가장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이다.
Apartheid를 번역하자면 '대가리를 따로 떼어 놓는다'는 말이다.
'하얀 대가리, 시커먼 대가리'는 따로 따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노골적 인종차별정책 때문에 세계 각국이 '남아공 백인정권'과 어떤 형태의 교역-교류도 금지한다는 봉쇄정책에 나섰다.
남아공 백인정권은 세계각국의 봉쇄정책에 결국 무릎을 끓고, 세계최장기수로 감옥에 복역중이던 만델라에게 정치협상을 통해서 정권을 넘겼다.

아파르트헤이트가 1993년 까지 유지됐으니, 남아공은 가장 최후까지 버틴 봉건적 반현대의 마지막 보루였다고 해야한다.
영화 '디스트릭트9'에서 외계인을 흑인으로 대입하고, 외계인거주지역인 '9구역'을 소웨토로 해석하면 흑백분리정책 당시의 흑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한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되고 있는 남아공 흑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가장 치열한 고발영화다.
흑인으로의 정권교체이후 정부는 흑인들 밀집지역의 상징인 소웨토를 비롯한 흑인집단거주지역에 주택개량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걸 만델라프로젝트라고 한다.
결과로 소웨토지역이 조금은 나아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산동네 판자촌과 별로 다를바 없다.
흑인밀집지역의 거리는 온통 쓰레기 천지고, 양철로 지은 누더기 옷 같은 게딱지 만한 집들이 빈틈없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바닷가 바위에 덕지덕지 붙은 홍합군락 처럼 보인다.
반면에 백인들은 그림 같은 경치가 펼쳐진 곳에 진짜로 그림같은 집들을 짓고 산다.
이런 극단적 빈부격차가 남아공 문제의 핵심이다.
백인들은 극단적으로 가난한 흑인들의 범죄 개연성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남아공이 각종 경비업이 발달한 이유다.

마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자기가 아는 두명이 살해당했다.
언제 또 누가 살해당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년에 자기집에 최소한 다섯번은 범죄적 강탈이 발생한다.

이건 거의 지옥 수준이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1994년 이래로 남아공정부는 흑인들의 주거안정과 중산층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그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거리는 으리으리한 백인들과 초췌한 흑인들로 선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 소웨토지역의 어린 학생들이 길거리에 앉아있다 >

< 소웨트에서 점심을 먹었던 식당 옆집 아이들 : 만델라 프로젝트로 추진된 개량주택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

<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저항운동 기념관 앞에 있는 기념비 : 저항운동 당시의 어린학생 희생자 헥터의 사진과 그에 대한 글이 기념비에 적혀있다 . 기념관 안쪽에 당시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희생자들의 신상을 새긴 수 많은 벽돌들이 있다. 카디쉬만의 '기억의 공백'과 유사한 공간을 만들었다. '기억의 공백'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기억투쟁 공간이다. 카디쉬만이 창조한 기억투쟁 공간이 인류의 보편적인 기억투쟁 방식으로 자라잡고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아뭏든 그걸 보고 있으면 슬프기도 하고,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처연한 생각도 든다.  >

< 소웨트지역에 있는 동네가게 >

< 기념관 바로 앞 노점 : 아프리카 특유의 공예품들인데 견고하고 예술적인 품격이 느켜진다. 아프리카 조각들의 예술적 완성도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비슷비슷한 조각공예품을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 사진만 찍지 말고 물건을 사라고 농짓을 하고 있다. 흑인들이 곤궁해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얼굴은 밝고 명랑하다. 어디서나 그들의 낙천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 투투주교의 집이라는 표식 : 투투주교는 1994년 흑인으로의 정권교체 이후로 거의 현실참여를 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티벳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라마 초청불발 문제로 정부와도 갈등 상태에 있다. 워낙 남아공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세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달라이라마의 입국을 정부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투투는 분리정책시절 달라이라마의 전폭적 지지에 대한 빚이 있고, 그걸 갚고 싶어 한다 >

< 만델라의 집 : 현지인들은 옛날의 누추한 만델라 집을 허물고 으리번쩍하게 새로 지은 만델라의 집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본다고 한다 : 현재 만델라는 깊은 오지 자기원래 부족인 코사족 마을의 확인할 수 없는 지역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만델라가 남아공의 구심점으로서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2011년도에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 당시에 남아공 전체 사회가 깊은 시름에 빠졌단다. 백인들조차도 만델라 없는 남아공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만델라의 건강에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

< 길가 잔디밭에서 놀고 있는 소웨토 지역의 아이 : 어딜가나 어린아이들은 순진무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