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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영화보기

나인 : 몽타주 처럼 써보기



나인을 봤다.

1. 사랑이란 ?
영화속에서 귀도의 나이와 내 나이가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감정이입이 쉬웠다.
단지 영화속 귀도가 나 보다 조금 더 섹시할 뿐이다.
정말 단지 조금.
어쩌면 내가 귀도보다 쫌 더 섹시한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했던 그 순간에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랑에 빠진다는건 결국 자기를 사랑한다는걸 확인하는 환상일거다.
세상에 나르시즘만끔 강력한 힘이 어디 있을까?
결국 자기를 누군가에게 투영해놓고 그것에 빠지는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나르시즘를 빼 놓고 나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을까?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고,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좀더 쉽게 말하면, 사랑이란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2. 친구란 ?
영화 속에서 귀도의 친구이면서 영화의상 담당자인 릴리 같은 친구한명 있으면 좋겠다.
그녀는 귀도에게 그냥 친구다.
자기의 가치관이나 잦대로 귀도를 제단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귀도를 인정해주고 받아주고 놀아준다.
성공의 순간에도, 실패의 순간에도, 번민의 순간에도 그녀는 친구로 그냥 있어준다.
귀도가 최종적으로 실패하고 떠돌아 다닐때 그를 부축해 일으키는건 릴리다.
'다시 한번 해봐. 내가 영화를 만들때 사람들은 너를 제일 사랑해'라고 격려한다.
지금보다 더 이리석었을 때 나는 친구란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나와 친구는 생각도, 가치관도, 사는 모습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지 않은 점이 항상 불편했고, 불만이었다.
아마 친구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제단하려 했을거고, 그런 욕망은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처럼 행사되었을거다.
지금은 같은 친구를 견딜수 없을것 같다.
김영민은 친구 대신에 동무를 두라고 말한다.
동무 同無 란 '동일한게 없다'는 말이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버텨줄 수 있는 친구가 훨씬 좋을것 같다.
이 세상은 얼마나 넓고 다른가?
그렇다면 서로 다른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성장과정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고, 성도 다르고, 다른것 투성이다.
차이를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하는게 오히려 쉽다.
그래서 굳이 친구를 둔다면 동무로 삼겠다.
김영민식으로 '친구도 동지도 연인도 아닌' 동무!
옛날에는 무시로 사용하던 말인데 지금은 죽어 버린 말 동무!


3. 연인이란 ?
영화속에서 귀도에게 여자들은 영화을 위한 일종의 소모품이다.

루이자

마리온 꼬띨라르가 분한 귀도의 아내역이다.
그녀는 귀도가 자신을 영화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것에 질린다.
귀도의 복잡한 여자관계는 영화만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영화 만들기가 없다면 귀도의 복잡한 여자관계도 없다.
이건 그녀에게 일종의 딜레마다.
그걸 그녀는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귀도에게 '너는 모든걸 다 가질려는 욕심쟁이고, 그러면 나는 텅 비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귀도를 떠난다.

그건 그렇고, 내게 중요한건 처음 보는 배우인데 꼬띨라르가 너무 이쁘다.
 
칼라와 사르기나와 엄마

칼라는 페넬로페가 분한 귀도의 정부역이다.
귀도의 가장 찌질한 파트너다.
칼라는 귀도의 어린시절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었던 사르기나로 해석할 수도 있을것 같다.
귀도가 그녀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하면 칼라는 어린시절의 사르기나고, 더 올라가면 깊고 깊은 잠재의식속에 있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근원인 엄마다.
이 세상에 엄마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영화 속에서 소피아 로렌이 분한 귀도 엄마의 속삭임은 너무 달콤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 세상 누구 보다도 너를 사랑하는건 이 엄마다.'
모든 정서의 뿌리인 엄마!
그래서 세상의 사랑은 질척거리는 찌질함일까?
아마 홍상수라면 귀도와 칼라의 이야기로 영화의 대부분을 만들었을것 같다.
나인의 주요 모티프도 결국 그거지만!

스테파니

스테파니는 매우 지적이고 공격적인 케이트허드슨이 분한 패션잡지 기자다.
귀도의 지성적 감수성에 직관적 매력을 느낀다.
영화처럼 말한다면 귀도의 스타일에 매혹된다.
스타일에 죽고, 스타일에 산다.
기자라는 직업, 글을 쓰는 일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갖는거다.
영화가 글로 쓰여진 텍스트라면, 영화는 귀도의 신체다.
문체란, 스타일이란 그 사람의 신체에서 풍겨나는 분위기다.
그걸 무어라고 딱 부러지게 규정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
그녀는 귀도의 스타일을 알아 본다.
귀도에게 또 다른 여난이 닥쳤다.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는 영화속에서 귀도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여신 뮤즈다.
여신처럼 생긴 니콜키드먼이 역을 맡았다.
인간에게 범접하면 신이 아니다.
그래서 귀도에게도 그냥 여신으로 남는다.
정작 본인은 귀도를 강렬하게 욕망했지만!
그게 이 세상 모든 여신들의 불행이다.
아마 여신들은 내 안에도 뜨거운 피가 흐른다고 말하고 싶으리라!
내 뺨에도 때로는 축축한 눈물이 흐른다고 말하고 싶으리라!
 

5. 영화란 ?
맘마미아를 보면서 뮤지컬 형식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는 장르라는걸 알았다.
그전에는 뮤지컬은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영화 나인을 보면서 새삼 뮤지켤 형식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는걸 느꼈다.

영화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진수성찬'이다.
소설, 시, 미술, 음악,--- 모든 텍스트가 다 있다.
그래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나인이 그런 영화다.
잘 생기고 예쁜 배우들도 떼거리로 나온다.
노래도 잘 한다는게 좀 신경질이 날 정도다.

그건 그렇고 원래는 영화를 빌려서 하이데거와 그의 연인 한나아렌트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엉뚱한 결과물이 나왔다.
생각하는 것과 그걸 쓴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그냥 결론 없이, 싱겁게, 갑자기, 뚝!

(김영민의 책 '동무와 연인'에 기대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