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독서 취향은 텍스트 바깥에서 놀기다.
텍스트에 빠져서 길을 헤메는 걸 두려워한다.
어떤 텍스트를 깊게 들여다 보지 않고 대충 2차 자료에 의존해서 아는 거다.
간편하게 용어를 만들자면 '껍닥읽기'다.
기질상 남을 깊게 신뢰하지 않는 습성이 그런 독서 습관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험으로 배운 효과적인 지식 획득방법이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은 사람을 통하는 거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많은 지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언젠가 서로 전공 분야가 다른 4명이 공동 연구실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같은 공간에서 차마시고, 함께 몰려 다니면서 노는것만으로도 많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도 껍닥 읽기 비슷한 독서의 형태다.
영화감독 이준익이 '왜 책을 읽어요? 책 많이 읽은 친구만 있으면 돼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인터뷰를 보고 박장대소를 했었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요즈음은 네트웍이 하도 발달해서,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할 상당한 고급 정보들이 검색 한두번에 쫘르르 쏟아진다.
근데 이것도 결국은 껍닥 읽기 비슷한 독서의 형태다.
이런 다양한 껍닥읽기가 있다.
이런 껍닥읽기의 장점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텍스트에 홀랑 빠져 자신을 잃지 않고 전체적인 조망을 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독서는 주어진 텍스트를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속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전망을 예측하고, 평가를 내리는 행위를 만들어 낸다.
평가자로서 자신이 자리매김 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텍스트의 진정한 주인처럼 느껴지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독서들의 대부분이 이런 '껍닥읽기'의 것들이다.
근데 이게 한계에 봉착했다.
내 언어가 기존의 어떤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는 성립하지 않는 빈곤함의 벽에 부딪혔다.
이걸 돌파하자면 '껍닥읽기'의 한계를 벗어날 수 밖에 없다.
등반 안내서는 잔뜩 읽었는데, 정작 어느 산도 직접 등반을 해보지 않은 것 같은 헛헛함이 있다.
이런 공허함을 극복하려면, 직접 배낭메고 길을 나서는 수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가다가 절벽도 만나고, 누구도 보지 못한 찬란한 경치도 있을거다.
그런 새로운 시도가 니체의 원전을 읽어보자는 생각이다.
그게 현재로서는 가장 쉬운 길이다.
일상의 경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