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기-영화보기

공포의 모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차이를 생산한다,라는 생각에 빠져있다.

차이의 생산이라는게 현실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을 자주 한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이질적인 나에게 무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서 자기 존재가 무너지는 위협감을 느킨다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포스트모더니즘계열의 철학들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 고민의 일부분을 정리해 두고 싶다.

나에게 공포를 느키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공포를 느키기 때문이다.
제발 살려주세요.
나 무서운 사람 아니예요,라는 고백이다.

먼저 살펴 볼 것은 공포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비르노라는 사람이 있다.
비르노는 불안/공포를 서로 다른 차이 나는 개념으로 다룬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불안은 세계의 불안전성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알 수 없음이 세계에 대한 불안의 심리를 일으킨다.
이에 비해서 공포는 무엇에 대한 공포라는 명확한 대상을 가진다.
흑인에 대한 공포, 여자(남자)에 대한 공포라는 식으로 구체적 대상을 가진다.
불안/공포를 비교하자면 불안이 공포보다 심급이 훨씬 깊은 감정이다.
사람들은 세계자체의 불명확성 때문에 불안을 가지는데, 이걸 피하기 위해서 공포라는 심리를 개발한다.

이렇게 보면 불안은 공포를 낳는 보다 근원적 심리다.

사람들은 이런 불안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한다.
그래서 개발한게 무엇은 위험하다라는 공포심리다.
흑인은 위험하다. 여자(남자)는 위험하다.라는 식으로 대상을 확정하고 이걸 피할 행동지침이나 영역 등을 개발하고 세상을 안정된 것으로 파악한다.
무엇은 위험하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이제 안전하다,라는 식으로  공포의 대상을 가상적으로 만들어서, 그것에 대한 안전한 방책을 구상했으니 이제 나는 안전하다고 인식한다. 공포를 만들어서 불안의 심리를 처리한다.

결과적으로 공포는 구체적 행위 경험의 원인과 결과의 논리로서 작동하는게 아니라, 그에 앞서서 먼저 가상적으로 공포의 대상들을 무수하게 규정해 놓고, 이걸 피하기만 하면 나는 안전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공포의 대상들은 사회적 이데올로기로 부터 구성된다.
그런 가장 강력한 수준의 것이 국가라는것을 작동시키는 이데올로기 이다.

사람들에게 강요된 허구적 이데올로기로서 가장 폭넓게 수용되는게 홉스의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자원은 한정 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항상 투쟁상태에 있다.
이런 항상적 투쟁상태는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공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에 자기권리의 일정 부분을 양도한다. 나도 너도 그렇게 자기권리 행사방식에 대한 한계나 방법 등을 국가주권이라는 형식으로 양도해서 서로가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했다고 안도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주권이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서 공포의 대상을 허구적으로 만들어 내는 심리와 동형적이다.

이런식의 공포심리는 기본적으로 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부터 구성된다는 점에서 허구적 이데올로기다.
차이가 자기존재를 위협한다는 상상력을 작동시킨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차이나는 그 무엇에 자신의 불행을 투사한다.
차이를 제거하면 자기의 안전이 확보된다고 가정한다.
일종의 원한감정을 차이들에 투사하는거다.
상상력에 의존한 이런 인식은 현실에 대한 사실적 이해를 왜곡시킨다.

나치체제에서 차이나는 유대인은 독일사회 문제의 모든 원인으로 해석됐다.
제국주의적 식민지 쟁탈전이 극에 달하던 시기, 유럽적 문화에 차이가 나는 원주민들은 공포의 대상이거나 부정의 대상이었다.
흑인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기, 모든 흑인들은 백인의 기준에 정반대라고 상상했다.
흑인에 대한 신체적 가혹행위는 흑인들에게서 백인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상상했다.
차이에 투사되는 원한 감정은 공포를 처리하려는 그래서 불안을 없애려는 허구적 상상력이다.

차이를 무화시켜, 동일성을 확보함으로서 안전을 지킨다라고 할때, 동일성의 영역에 대한 지식은 근대이성에 의해서 구축된다.

홉스의 국가주권 논리와 같이, 합리적 이성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추론된 진리이다.
이런 진리가 불완전하고,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유효한데 이걸 절대적인 어떤 것으로 상상한다는 거다.

20세기 초-중반 까지 위세를 떨친 과학적 진리라고 받아들여진 우생학적 진리는 1.2차 양차대전의 근본 뿌리다.
서구 세계의 식민지 진출과정에서 식민지인에 대한 대량학살은 서구적 기준의 인간과 차이나는 식민지 인간을 대립적 차이가 나는 공포의 대상이라고 인식하거나, 아니면 인간이 아닌것으로 부정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에 빠지면 두가지 차원에서 사람들의 행동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행위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들을 만든다.
현실속에서 자유롭게 차이를 만들어 내고, 그런 차이들을 즐기는 행동방식을 제한하고, 공포를 일으키는 행위 영역이라고 표시된 안전선안으로 자꾸 밀려들어가는 수동적 행위만을 산출한다.
공포의 영역이라고 표시된 안전선 안으로 밀려 들어가니, 자율성을 상실하고, 타율적이 된다.
이런 타율적 존재는 자기 스스로의 행위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외부에서 주어진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지정된 것에 의존해서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공포 심리에 기반을 둔 수동적 행위들의 집합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동일한 어떤 기준선으로 모이게 하는데 이게 두번째 수준의 문제를 야기한다.
공포에 기반을 둔 동일한 행동유형들은 이런 동일성에서 벗어난 차이 나는 행위들에 자기 존재를 위협하는 공포를 느낀다.

차이가 동일성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를 위협하는 공포라고 인식한다.
그런 차이를 공격해서 섬멸해야 자기의 안전이 확보된다고 생각한다.
비르노는 이런 터무니 없는 공포의 심리가 '잔혹한 반응'을 유발시키며, '위험 천만한 방어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가 국제 정치영역에서 발생하면 엄청난 파멸적 결과를 가져온다.
부시가 이라크, 이란, 시리아, 북한 등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할 때 이런 공포의 심리가 작동한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로 9.11테로후 미국 네오콘들은 이슬람세력의 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갈등으로 인한 3차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슬람국가들 또는 이슬람문화들 간의 다양한 차이들을 너무도 쉽게 단순화시켜 차이를 소멸시키면서 섬멸해야할 공포스런 위협으로 간주하는 차이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거다.

홉스의 주권이론에서 보듯이 공포의 논리는 상상으로 구성해 내는 합리적 이성이다.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실제하는 차이나는 인간들 간의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 기호-상상-논리-추리 등으로 전쟁하는 상상속의 전쟁의 장이다.
역사속에서 존재하는 국가들이 홉스식으로 구성된 예는 한번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국가의 탄생은 강력한 어떤 힘이 강제로 무언가를 편입하면서 발생한다.
홉스식으로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국가가 만들어진게 아니라, 폭력적 힘에 의해서 국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차이를 공포로 인식하는 논리는 허구이고, 그 구체적 현실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실제 폭력을 야기하는 것은 이런 잘못된 차이에 대한 공포의 인식이다.

그러니 제발 '차이나는 나좀 잘 봐줘! 제발 나좀 무서워 하지마. 그냥 좀 다를 뿐이지 내가 너를 위협하는 공포스런 괴물은 아니야!'라는 게 내 말의 결론이다. 제발 나 왕따 시키지 말고 나하고 같이 놀아줘라는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다. 제발 내가 너희들과 다른 차이가 난다고 내가 무서워서 나를 섬멸할려고 하지마, 나는 그게 진짜 무서워라는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다.

이건 차이의 생성이 아니고, 차이의 승인이다. 니가 우위에 있는 힘이고, 나는 너의 승인을 구걸하는 열위적 힘이라는거다. 그러니 제발 좀 봐줘라!


cf) 결론적으로 국가가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국가는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기구다. 최종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로 부터 자유로운 국가의 외부를 상상할 수 있을때 가능하다(국가의 외부를 물리적 공간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마음속으로 '시껌'하다면 국가가 억압적인 폭력기구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인정한다는 반증이다.

이 글은 진은영의 책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186-205p'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실제 책의 내용은 '사회계약론의 허구성' '공포심리에 대한 분석과 허구적 공포 심리의 폭력성' '변증법의 폭력성' '공포와 원한의 논리의 뿌리' 등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