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순대국밥 집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삼성이 값을 셈할 수 없을 만큼의 돈을 주고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다.
삼성 비자금 조사과정에서 세상에 널리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리히텐슈타인은 다른 누구 보다, 피카소나 고흐 같은 인물보다 더욱 유명하다.
순대국밥집에 걸려 있는 그의 '행복한 눈물'이 그걸 잘 증명한다.
앤디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은 1960년대 대량생산 소비사회와 맥락을 함께한다.
그전까지 예술계의 주류였던 난해하고 심오한 그러면서도 고급스런 엘리트취향의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이었다.
심오한 고급스러움 대신에 천박함을, 엘리트 대신에 대중을, 진품 대신에 대량복제품을 선택했다.
위에 있는 '행복한 눈물'의 소재는 만화그림이다.
만화의 한 컷을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만화라는 가장 대중적 소재를 선택함으로서 심오한 추상미술에 엿을 먹였다.
형상을 표현하면서 점(벤데이닷)으로 그려서 화가의 예술가적 붓터지 효과를 삭제해 버렸다.
엘리트 예술가에 대한 부정이다.
벤데이닷이라는 인쇄기법을 차용함으로서 대량복제 방식을 모방하였다.
벤데이닷은 무한복제가 가능한 현대의 모든 전자적 이미지표현 방법의 효시다.
유일한 고급스런 심오한 그리고 순수한 진품에 대한 저항이다.
여성의 눈물이라니, 뻔한 여성적 로맨스라는 감수성을 차용했다.
'꽝'이라는 전쟁을 묘사한 작품에서 보이는 뻔한 남성적 감수성에 대한 대칭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천박함, 대중, 가짜 모조품'이라는 문제의식이 그대로 다 드러난다.
이런 팝아트의 문제의식이 드디어 한국순대국밥집에서 완성되었다.
1960년대 어느 똘끼 많은 예술가의 어긋내기가 50년을 거쳐서 한국에서 멎진 꽃이 되었다.
순대국밥 먹으면서, 순대국밥에 어울릴법한 허접한 예술비평을 지껄였나?
그나저나 순대국밥은 싸고(5,000원) 맛있었다.
모든게 리히텐슈타인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