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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경치

상경


상경이란 한자말은 어딘가 빛나는 으리으리한 성공과 출세의 냄새가 난다.
그런데 나는 경성, 서울이란 말에서 생활의 고달픔에 찌든 누추함을 떨 칠 수 없다.
어렸을 적 형제가 많았던 나는 서울에 여럿의 누님들이 있었다.
누이들은  한강변 쪽방촌이나 미아리 고개 넘어 산비탈 판자집 동네에서 살았다.
나도 한때는 그 동네 언저리에서 몇년을 살았다.
그래서 나는 서울이 얼마나 누추한 동네인지 잘 안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사는 집 빼고 수십억은 있어야 으리으리한 서울을 맘편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십다.
아마도 서울에 그런 정도로 사는 사람은 서울 사람들의 10% 정도나 될까.
나머지 90% 서울 사람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그악스럽게 버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상경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두통 비슷한 통증을 느낀다.

3주 연속 주말마다 상경을 했다.
8.15 노동자대회,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탄압저지 노동자대회, 희망버스가 주말마다 줄줄줄 이어졌다.
가기 싫다는 촌에 사는 속편한 선생들 선동하자니 앞장서지 않으면 일이 진척이 없다.
할 수 없이 깃발들고 미친놈 처럼 설치고 다녀야 겨우겨우 뭔가 눈꼼만큼의 성과가 있다.
그 와중에도 대회마다 나름의 차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노동자 대회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다.
민주노총의 위기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조직력과 돈을 있는데로 때려 부어도 이슈가 잘 잡히지 않는다.
이슈를 만들기 어려운 고달픔이 대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다.
반면에 희망버스는 자발성이 넘친다.
난장처럼 여러 이슈가 흘러 넘친다.
장애우들, 여성단체들, 예술인들, 시인들, 명동철거민들, 학습지노동자들, 비정규직들, 진보신당, 국참당 ---.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종 다양한 한국사회의 모든 이슈들이 집결한다.
노동문제와 포스트모던적문제들이 이종 결합한 모양새다.
희망버스가 희망인 것은 아마도 이런 이종결합에 있을것이다.

한국사회 문제는 근대성의 완수와 포스트근대성의 이해라는 걸 희망버스는 잘 보여준다.
이런 상경이면 두통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