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 모델이 쟌다르크라고도하고 그리이스여신이라고도 한다. 가슴을 드러낸 것은 프랑스혁명이 여성적 성격을 가진다고도 하고, 신체를 억압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나는 쟌다르크가 무섭다.
좀더 말을 일반화하면, 나는 여자들이 무섭다.
좀 뜬금없는 언술이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변방에서 태어나서 17세의 나이에, 풍전등화에 처한 조국 프랑스를 구한다.
100년간을 이끈 전쟁에서 영국에 연전연패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단번에 구한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것 아닌가?
말이 점점 샛길로 간다! 샛길에서 놀아보자!
오래전에 도시빈민운동을 했던 어떤 여성운동가가 쓴 르뽀 비슷한 책을 읽었다.
책 내용이 이렇다.
'서울 강서구 한강 둔치의 깨알같은 천막들로 이루어진 빈민촌에 빈민운동을 하러 짐싸들고 들어갔다.
몇년간 공부방도 열고, 자치회도 조직하고 열심히 일했다.
처음에 의심반 호기심 반으로 바라보던 주민들도 그녀의 진정성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줬다.
어느날 느닷없이 재개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주민들을 조직해서 치열하게 싸웠다.
특별히 아줌마들이 싸움의 최일선에서 정말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프랑스 혁명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가 따로 없었다.
이대로 진행되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밀어 부치자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것이다.
갑자기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뿌연 먼지가 걷히면서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전투의 뿌연 먼지가 걷히면서 그 동안 꼬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노털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하는게 보였다.
건설업자가 처음에 제시한 딱지 가격보다 눈꼼만끔 많은 성과를 취하고 전쟁은 끝났다.
세상에나!
그렇게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아줌마들이 전투의 성과물을 모두 전투의 결정적 국면에서 자기 아저씨들에게 갖다 바친것이다.
그러자 아저씨들이 나서서 그것을 달랑 엿가락 몇개와 바꿔먹은 거다'
(어딘지는 모르나 포털에서 검색한 뚝방촌 사진)
나도 이런 동네를 잘 안다.
땟국 질질흘리게 가난하게 살던 어렸을적 서울에 사는 큰누님집을 찿아 갔다.
촌놈에게 서울은 엄청 휘황한 곳으로 이미지 되어 있었다.
실제는 달랐다. 충격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 누님이 살던 동네가 강서구 신정동 뚝방동네 였다.
박정희가 농촌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서울로 끌어모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저 살던 동네다.
세상의 모든 빈민촌이 그렇듯이 입구와 출구가 없는 미로의 세계다.
그 미로의 세계에 꼬딱지 만한 움집을 짓고 수십만명의 사람들은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한강변 아파트촌이 되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여기서 추방되어, 강북 산동네로 모여 들었고, 이곳은 다시 이명박의 뉴타운으로 재개발 되면서 다시 어딘가로 추방될 것이다
( 뚝방촌이 재개발된 후 한강변 아파트촌 사진 - 원 주민들이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재개발은 원주민을 소외시켰다. 재개발의 과실은 모두 상류 5%로가 가로챘다)
이 빈민운동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라는 뿌리가 한국사회 최종심급 모순이라는 것을!
그래서 처철한 패배를 추스리고 빈민운동에서 여성운동으로 전향했단다.
샛길에서 놀았으니,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가 무서워하는 여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철저하게 내면화한 여자들이다.
자기의 삶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자식을 위한 삶을 산다.
주류 사회가 그런 모습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주니 심리적 자부심의 뒷 배경도 확실하다.
이런 여자들에게서 쟌다르크의 힘이 나오는건 당연하다.
이런 여자들이 한번 힘을 쓰기로 작정하면, 100년 동안이나 프랑스군을 열세에 몰아 넣었던 영국군을 한번에 엎어 버릴 수 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아줌마의 힘'
이런게 다 이런 이야기 아닌가!.
나는 이런 여자가 무섭다.
도저히 그 강고한 힘을 이길 자신이 없다.
자기안의 17살짜리 순정한 소녀와 결별하지 않은 아줌마 어머니가 대한미국 어머니 모델이다.
자식과 남편과 부모로 부터 자기존재를 입증 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 세계 말고, 또 다른 자기 존재의미를 만들려는 생각은 눈꼼만큼도 없다.
자신의 성숙과, 자신을 돌보는 일은 상상조차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시장의 선전에 매혹된 외모다듬기 정도다.
내말이 이해가 안되면, 강남 헬리콥터 아줌마를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한다면, 그 누군가는 평생 그 희생의 '값음'이라는 것에 시달려야 한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자기 삶을 희생했구나.
고맙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이러고 깨끗하게 정리하기 쉽지 않다.
희생으로 엮인 관계는 억압적 내부를 가진다.
프로이드의 가족모델이 비관적인 암울함으로 가득한 건, 그가 당시 유럽 중산층의 이런 가족모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필연적 결과다.
가부장적 가족모델은 여자의 삶을 부정하는것 만이 아니라. 동시에 남자의 삶도 부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의 삶도 부정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를 부정의 힘으로 몰아가는 타나토스적 힘이 작용한다.
프로이드의 가족 모델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를 죽여야, 그때서야 비로소 새로운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한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모든 글 쓰기는 살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한 것 아닌가!
공자의 이야기에 이런게 있다.
'공자가 어는 날 길을 가는데 어떤 농부가 열심이 밭을 갈고 있었다. 이 농부가 공자에게 물음을 청했다.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한수 가르침을 주라.
공자 : 갈던 밭이나 열심이 갈아라'
설명이 필요한가?
자식걱정 하지 말고, 니 삶이나 열심히 살아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단순하게 그렇게 해석한다(TV에서 김용욱이 했던 해설을 따옴).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가르친다.
그건 자기 삶에 대한 부정일 뿐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이런 희생을 무릎쓰고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있으니 너는 그걸 알아라'라고 받아들이기 딱 좋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죄책감의 굴레를 지게 된다.
이걸 벗어나자면 아버지와 다른 자기를 정립하고, 아버지를 죽이는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런 성장 과정을 거쳤다.
이건 좀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지만,홍세화는 대한민국 학교교육자체가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교육으로 짜여져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냥 자기 삶을 열심히 살자.
자식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살자.
내 삶이 가장 먼저가 아닌가!
누군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산다는 말은 정직하지도 않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게 누군가 무엇인가를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생이 억압의 고리로 순환하지 않을려면 희생의 다음에 서있는 사람이 그 희생을 그냥 무시해야하고, 희생자는 그런 다음의 행위자에게 아무런 섭섭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것을 가능하게하기 위해서 작동된, 나와 그 누군가에 대한 동일시는 이런 식으로의 심리 작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너한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면서 다음 행위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희생이라는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서는 내 삶을 충실하게 사는것이 선행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나와 자식도, 나와 너도, 나와 우리 부모도 아무런 조건에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사랑할 수 있다.
우리의 가족제도는 아직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 자기를 완전히 없애야만 극복이 가능했던 8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유사한, 그런 끔찍한 후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나는 조승희의 죽음이 사회에 대한 저주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기 분노의 극단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승희의 부모가 자기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더라면, 조승희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비록 조승희를 경제적으로 후원할 돈이 부족해서 조승희를 덜 배려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렸다면, 조승희의 삶의 행로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조승희에게는 자부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그런 자부심과 심리적 건강이 있었더라면 조승희는 지금 당장 뒤처진 것 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라도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 거다.
미국으로 그대로 이식된 한국의 가족 모델의 희생자가 조승희이고, 그 가족이다.
그 분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런 식의 발언이 상처를 덧 낸다는 건 알지만 블로그라는게 공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희생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조승희사건이 터졌을때 우리 사회가 우리의 가족모델을 제대로 점검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서너달만 지나면 이게 우리 사회를 혁신적으로 바꿀 논쟁들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번째 반응은 미국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 노무현의 천박한 사과 성명서이고, 뒤이어 그것은 미국에서 생긴 우리가 책임질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후안무치한 언론들의 반응이었다.
이걸 심층적으로 추척하거나 다룬 어떤 글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는 조승희 사건을 냉정하게 이슈화해야 한다.
그게 희생자를 위해서도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젊디 젊은 목숨 수십명을 버리고도 세상이 미동도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는건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죽은자에 대해서도 슬픈일이다.
말이 샛길로 한참이나 샜다. 이 왕 샌김에 더 가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20살 이상이 되면 부모와 자식관계를 청산하는 서구의 가족모델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70살 아들이 90살 아버지와 연결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가족에게 떠 넘기기 위한 허황된 경로애친 어쩌고하는 술책에 불과하고 생각한다.
소위 선진국 중에 우리처럼 노후를 가족에게 몽땅 떠 넘기는 나라가 어디있냐?
그러니 경로애친의 천국이라는 나라에서 노인을 길거리에 버리는 모순이 발생하는것 아닌가?
말이 너무 많이 샛길에서 놀았다.
다시 쟌다르크로 돌아가자.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
pc방에 최소한 5,000원은 내야할 것 같다.
17세 소녀 순정한 쟌다르크의 용맹함으로 프랑스가 영국에 승리하고 나자, 프랑스는 쟌다르크가 결코 반갑지 않았다.
교회 입장에서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으로 부터 조국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의 주장이, 교회를 뭉개고 있었고, 현실 정치세력으로 부터는, 현실 정치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린 그녀가 버거웠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 재판에서 이단이라고 몰려서 처형되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 메스미디어 - 교회 등이 수도 없이 많은 쟌다르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근데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는 한번 쟌다르크는 나이 60에도 70에도 17살 짜리 소녀 쟌다르크로 그대로 존재한다는 거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괴물 쟌다르크는 학교 주변에 특히 많이 산다.
나는 그런 여선생님들이 무섭다.
나이들지 않는 순정한 쟌다르크, B사감 같은 여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만 무서운게 아니다.
나 같은 늙다리 아저씨도 무섭다.
제발 부탁한다.
순정한 17살 소녀 쟌다르크가 성숙한 여자가 되어 자신의 행복을 돌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생각해 보라.
70살 짜리 소녀 쟌다르크가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있냐!
조국 그만 구하고, 학교도 그만 구하고, 가족도 그만 구해라.
조국도 학교도 가족도 쟌다르크가 무섭긴 마찬가지다.
자기안의 17살짜리 소녀성과 결별하지 못한, 더 이상 성장하기를 멈춘 순정한 쟌다르크는 너무 무서버! 아이고 피곤하다.
괜히 무서운 아줌마들한테 시비건거 같은 느낌이 팍 온다.
고만 도망가야할 것 같다. 끝.
나는 쟌다르크가 무섭다.
좀더 말을 일반화하면, 나는 여자들이 무섭다.
좀 뜬금없는 언술이다.
잔다르크는 프랑스 변방에서 태어나서 17세의 나이에, 풍전등화에 처한 조국 프랑스를 구한다.
100년간을 이끈 전쟁에서 영국에 연전연패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단번에 구한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것 아닌가?
말이 점점 샛길로 간다! 샛길에서 놀아보자!
오래전에 도시빈민운동을 했던 어떤 여성운동가가 쓴 르뽀 비슷한 책을 읽었다.
책 내용이 이렇다.
'서울 강서구 한강 둔치의 깨알같은 천막들로 이루어진 빈민촌에 빈민운동을 하러 짐싸들고 들어갔다.
몇년간 공부방도 열고, 자치회도 조직하고 열심히 일했다.
처음에 의심반 호기심 반으로 바라보던 주민들도 그녀의 진정성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줬다.
어느날 느닷없이 재개발 바람이 불어 닥쳤다.
주민들을 조직해서 치열하게 싸웠다.
특별히 아줌마들이 싸움의 최일선에서 정말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프랑스 혁명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가 따로 없었다.
이대로 진행되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밀어 부치자 그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것이다.
갑자기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뿌연 먼지가 걷히면서 정말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전투의 뿌연 먼지가 걷히면서 그 동안 꼬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노털 아저씨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왔다리 갔다리하는게 보였다.
건설업자가 처음에 제시한 딱지 가격보다 눈꼼만끔 많은 성과를 취하고 전쟁은 끝났다.
세상에나!
그렇게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아줌마들이 전투의 성과물을 모두 전투의 결정적 국면에서 자기 아저씨들에게 갖다 바친것이다.
그러자 아저씨들이 나서서 그것을 달랑 엿가락 몇개와 바꿔먹은 거다'
뚝방촌사진
나도 이런 동네를 잘 안다.
땟국 질질흘리게 가난하게 살던 어렸을적 서울에 사는 큰누님집을 찿아 갔다.
촌놈에게 서울은 엄청 휘황한 곳으로 이미지 되어 있었다.
실제는 달랐다. 충격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 누님이 살던 동네가 강서구 신정동 뚝방동네 였다.
박정희가 농촌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서울로 끌어모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저 살던 동네다.
세상의 모든 빈민촌이 그렇듯이 입구와 출구가 없는 미로의 세계다.
그 미로의 세계에 꼬딱지 만한 움집을 짓고 수십만명의 사람들은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한강변 아파트촌이 되어 있다.
이곳 주민들은 여기서 추방되어, 강북 산동네로 모여 들었고, 이곳은 다시 이명박의 뉴타운으로 재개발 되면서 다시 어딘가로 추방될 것이다
( 뚝방촌이 재개발된 후 한강변 아파트촌 사진 - 원 주민들이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든 재개발은 원주민을 소외시켰다. 재개발의 과실은 모두 상류 5%로가 가로챘다)
이 빈민운동가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라는 뿌리가 한국사회 최종심급 모순이라는 것을!
그래서 처철한 패배를 추스리고 빈민운동에서 여성운동으로 전향했단다.
샛길에서 놀았으니, 본론으로 돌아오자.
내가 무서워하는 여자들은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철저하게 내면화한 여자들이다.
자기의 삶이 아니라, 남편을 위한, 자식을 위한 삶을 산다.
주류 사회가 그런 모습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주니 심리적 자부심의 뒷 배경도 확실하다.
이런 여자들에게서 쟌다르크의 힘이 나오는건 당연하다.
이런 여자들이 한번 힘을 쓰기로 작정하면, 100년 동안이나 프랑스군을 열세에 몰아 넣었던 영국군을 한번에 엎어 버릴 수 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아줌마의 힘'
이런게 다 이런 이야기 아닌가!.
나는 이런 여자가 무섭다.
도저히 그 강고한 힘을 이길 자신이 없다.
자기안의 17살짜리 순정한 소녀와 결별하지 않은 아줌마 어머니가 대한미국 어머니 모델이다.
자식과 남편과 부모로 부터 자기존재를 입증 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그 세계 말고, 또 다른 자기 존재의미를 만들려는 생각은 눈꼼만큼도 없다.
자신의 성숙과, 자신을 돌보는 일은 상상조차하지 않는다.
기껏 해봐야 시장의 선전에 매혹된 외모다듬기 정도다.
내말이 이해가 안되면, 강남 헬리콥터 아줌마를 한번 상상해 보라.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내 삶을 희생한다면, 그 누군가는 평생 그 희생의 '값음'이라는 것에 시달려야 한다.
그냥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자기 삶을 희생했구나.
고맙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이러고 깨끗하게 정리하기 쉽지 않다.
희생으로 엮인 관계는 억압적 내부를 가진다.
프로이드의 가족모델이 비관적인 암울함으로 가득한 건, 그가 당시 유럽 중산층의 이런 가족모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필연적 결과다.
가부장적 가족모델은 여자의 삶을 부정하는것 만이 아니라. 동시에 남자의 삶도 부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의 삶도 부정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를 부정의 힘으로 몰아가는 타나토스적 힘이 작용한다.
프로이드의 가족 모델에 따르면 자식이 부모를 죽여야, 그때서야 비로소 새로운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한다.
그래서 어떤 작가는 '모든 글 쓰기는 살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말한 것 아닌가!
공자의 이야기에 이런게 있다.
'공자가 어는 날 길을 가는데 어떤 농부가 열심이 밭을 갈고 있었다. 이 농부가 공자에게 물음을 청했다. 자식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한수 가르침을 주라.
공자 : 갈던 밭이나 열심이 갈아라'
설명이 필요한가?
자식걱정 하지 말고, 니 삶이나 열심히 살아라.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단순하게 그렇게 해석한다(TV에서 김용욱이 했던 해설을 따옴).
이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고 가르친다.
그건 자기 삶에 대한 부정일 뿐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이런 희생을 무릎쓰고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있으니 너는 그걸 알아라'라고 받아들이기 딱 좋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죄책감의 굴레를 지게 된다.
이걸 벗어나자면 아버지와 다른 자기를 정립하고, 아버지를 죽이는 수 밖에 없다.
나도 그런 성장 과정을 거쳤다.
이건 좀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지만,홍세화는 대한민국 학교교육자체가 자기존재를 부정하는 교육으로 짜여져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냥 자기 삶을 열심히 살자.
자식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살자.
내 삶이 가장 먼저가 아닌가!
누군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산다는 말은 정직하지도 않고, 실제로 그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그게 누군가 무엇인가를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생이 억압의 고리로 순환하지 않을려면 희생의 다음에 서있는 사람이 그 희생을 그냥 무시해야하고, 희생자는 그런 다음의 행위자에게 아무런 섭섭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것을 가능하게하기 위해서 작동된, 나와 그 누군가에 대한 동일시는 이런 식으로의 심리 작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너한테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러면서 다음 행위자와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희생이라는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서운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서는 내 삶을 충실하게 사는것이 선행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나와 자식도, 나와 너도, 나와 우리 부모도 아무런 조건에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사랑할 수 있다.
우리의 가족제도는 아직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 자기를 완전히 없애야만 극복이 가능했던 8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유사한, 그런 끔찍한 후진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나는 조승희의 죽음이 사회에 대한 저주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한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자기 분노의 극단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조승희의 부모가 자기 삶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더라면, 조승희를 위해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비록 조승희를 경제적으로 후원할 돈이 부족해서 조승희를 덜 배려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렸다면, 조승희의 삶의 행로는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조승희에게는 자부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있었을 거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그런 자부심과 심리적 건강이 있었더라면 조승희는 지금 당장 뒤처진 것 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라도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을 거다.
미국으로 그대로 이식된 한국의 가족 모델의 희생자가 조승희이고, 그 가족이다.
그 분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런 식의 발언이 상처를 덧 낸다는 건 알지만 블로그라는게 공적인 의사소통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희생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조승희사건이 터졌을때 우리 사회가 우리의 가족모델을 제대로 점검할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서너달만 지나면 이게 우리 사회를 혁신적으로 바꿀 논쟁들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번째 반응은 미국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 노무현의 천박한 사과 성명서이고, 뒤이어 그것은 미국에서 생긴 우리가 책임질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후안무치한 언론들의 반응이었다.
이걸 심층적으로 추척하거나 다룬 어떤 글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는 조승희 사건을 냉정하게 이슈화해야 한다.
그게 희생자를 위해서도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젊디 젊은 목숨 수십명을 버리고도 세상이 미동도하지 않고, 그대로 간다는건 아무런 이유도 모르고 죽은자에 대해서도 슬픈일이다.
말이 샛길로 한참이나 샜다. 이 왕 샌김에 더 가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20살 이상이 되면 부모와 자식관계를 청산하는 서구의 가족모델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70살 아들이 90살 아버지와 연결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책임을 모두 가족에게 떠 넘기기 위한 허황된 경로애친 어쩌고하는 술책에 불과하고 생각한다.
소위 선진국 중에 우리처럼 노후를 가족에게 몽땅 떠 넘기는 나라가 어디있냐?
그러니 경로애친의 천국이라는 나라에서 노인을 길거리에 버리는 모순이 발생하는것 아닌가?
말이 너무 많이 샛길에서 놀았다.
다시 쟌다르크로 돌아가자.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다.
pc방에 최소한 5,000원은 내야할 것 같다.
17세 소녀 순정한 쟌다르크의 용맹함으로 프랑스가 영국에 승리하고 나자, 프랑스는 쟌다르크가 결코 반갑지 않았다.
교회 입장에서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으로 부터 조국 프랑스를 구하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그녀의 주장이, 교회를 뭉개고 있었고, 현실 정치세력으로 부터는, 현실 정치질서를 단숨에 무너뜨린 그녀가 버거웠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 재판에서 이단이라고 몰려서 처형되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 - 메스미디어 - 교회 등이 수도 없이 많은 쟌다르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근데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는 한번 쟌다르크는 나이 60에도 70에도 17살 짜리 소녀 쟌다르크로 그대로 존재한다는 거다.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괴물 쟌다르크는 학교 주변에 특히 많이 산다.
나는 그런 여선생님들이 무섭다.
나이들지 않는 순정한 쟌다르크, B사감 같은 여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만 무서운게 아니다.
나 같은 늙다리 아저씨도 무섭다.
제발 부탁한다.
순정한 17살 소녀 쟌다르크가 성숙한 여자가 되어 자신의 행복을 돌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생각해 보라.
70살 짜리 소녀 쟌다르크가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있냐!
조국 그만 구하고, 학교도 그만 구하고, 가족도 그만 구해라.
조국도 학교도 가족도 쟌다르크가 무섭긴 마찬가지다.
자기안의 17살짜리 소녀성과 결별하지 못한, 더 이상 성장하기를 멈춘 순정한 쟌다르크는 너무 무서버! 아이고 피곤하다.
괜히 무서운 아줌마들한테 시비건거 같은 느낌이 팍 온다.
고만 도망가야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