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도에 대한 논쟁에서 결락된 그러나 채워져야 할 질문들
Ⅰ. 전제로서 가정하는 대안 모델
★ 대안적 모델 :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의 대안을 찾아서 – 덴마크 교육 현장에 대한 10년간의 취재.
1) <수학도 즐거울 수 있다> - 헤닝 아프셀리우스(고등학교 뇌레 김나시움에서 수학, 물리학, 천문학을 가르침, 45세, 15년차) 아프셀리우스는 학기 초에 진도를 나가지 않는다. 어떤 숙제도 내지 않는다.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실의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충분한 이유를 갖지 전까지 수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프셀리우스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흥미 유발에 힘을 쏟는다.
2) <시험과 점수가 중요할까?? 헬레 호우키에르(54세. 32년차, 초중등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가르침) 덴마크 학생들은 8학년이 될 때까지 시험 점수를 개별적으로 받지 않는다. 교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를 확인하지만 이를 점수화하거나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어떤 시험이든 교실 밖의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면 안된다.
3) <영어 잘하고 싶니?> 안데르스 울랄(52세, 15년차, 초둥등학교 영어와 과학을 가르침)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영어로 좀 더 많은 대화를 안전하게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틀려도 주눅 들지 않도록 하고 격려하는 것,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엇인가를 채워주려고 하다 보면 심문하듯 질문하게 되고, 교사가 원하는 답을 못하는 학생들은 자신감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어떻게든 영어를 실제로 사용하도록 격려하는 일이다.
4) 오연호의 결론 : 덴마크의 교육은 학생자율(50%)과 교사자율(50%)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해마다 그 균형지점을 설정하는 갈등과 조정이 모든 교육당사자들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덴마크가 이런 학생-교사의 자율성을 풍성하게 지지하는 교육환경을 가꿀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육을 교육만이 가지는 내재적 가치가 작동하는 자율적 자치영역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오연호가 제시하는 모델로서 교육은 사실상 핀란드, 독일, 등과 같은 여러 경우들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대안들이다. 오연호의 10년간에 걸친 취재는 그런 수많은 사례중의 하나이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그런 모델들이 아니라, 그런 모델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의지나 능력이다>.
Ⅱ. 제기되어야할 문제들
1. 관료제도 주도성이라는 교육개혁(악) 정책추진 패턴의 문제점
1) 패턴 :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정책에 대한 연구용역 발주 – 연구보고서 채택 – 시도교육청의 관료제도 라인을 통한 정책 추진 – 시범학교운영 – 전면적실시 – 미봉의 상태로 교사들의 매개를 거쳐 학교현장에 정착.
(결과 : 학교현장의 불안정성의 지속적 증가, 교사의 업무증가와 교사의 업무에 대한 관료적 통제권의 지속적 증가, 결과로서 교과지식구성과 전달에 관한 자율성을 갖는 전문가로서 교사정체성의 훼손).
2) 대학교수들 중심의 연구 보고서의 주요내용 및 경향성
⓵ 5.31 교육개혁조치 이후의 교육과정 개정 : 매번 학생-교사의 자율권을 확대한다는 이데올로기로 치장되어 있으나 결국은 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의 힘이 학생의 학교활동에 강화되는 방향으로 기능함.
⓶ 교원평가. 교원성과급제 : 교사들의 직무 협력성을 가장 저해하는 폐해만 도드라지고 애초의 도입의도라고 떠들던 기능은 거의 소멸된 상황임.
⓷ 수행평가제 도입 : 지필평가의 창의적 대체가 아니라 또 다른 과도한 교사의 노동과 학생의 학습노동을 강제하는 기능을 함.
⓸ 네이스 도입 :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국가수준의 표준화된 교사직무수행 매체, 매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네이스는 교사의 직무수행관련 행위양식과 사고방식을 결정적으로 규정지움. 전제로서 상정된 덴마크교육모델들은 네이스라는 매체를 통과시키면, 현실적으로 성립 불가능함. 문제는 네이스라는 매체에 의존한 직무수행이 자연상태로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거의 불가능함. 네이스라는 매체물질이 이데올로기 수준에서 무비판적으로 교사의 행위와 직무수행을 격자화시키는 틀로 작동함. 그럼에도 네이스가 교사의 직무수행을 거의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매체라면, 이에 대한 꾸준한 성찰이 교육학적으로 검토되는 것이 필요함. 내가 사용하는 매체가 사람을 죽이는 칼인지, 밭을 가는 쟁기인지, 성찰하는 것은 전문가라면 너무나 당연한 의무임.(19년째 이 말을 반복하고 있음. 아마도 죽을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것 같아 두려움)
⓹ 수월성 추구 경향성(개별화 원리) : 과고-외고-자사고 등과 같은 제도의 도입과 미시적인 교실단위에서 조차 수준별 편성을 요구하는 서열화체제를 지지하는 논리의 확산 기능.
3) 관료제도의 비대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ex. 1실 5국 22과 ---> 4실 3국 13관 2단 65과) : 학교현장의 교장-교감에서 시작하는 관료(행정)조직의 비대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필요함. 단순하게 관료파트의 인적구성의 증가와 현장교사의 인적구성의 증가 비율만 실증적으로 따져 보아도, 관료조직의 비대화에 대한 결과가 산출될 것으로 추정됨.
관료제도의 비대화는 장구한 세월동안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유지했던 동아시아적 특징이 있는 문화적 배경을 가지므로(관료 충원제도로서 과거제의 작동), 이러한 중장집권적 국가체제의 전통이 민주적 학교운영(교육의 내적 자기가치에 충실한 교육의 작동) 요구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논의가 심화될 필요가 있음. 덧붙이자면, 한국사회에 일본의 식민잔재인 군국주의적 군사문화와 결합한 군사독재개발체제의 전통이 결합한 상태에서 교육을 국가개발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함. 이로 인한 중앙집권적 동원체제의 영향이 교육에 대한 관료적 지배체제를 정당화시키는 역사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음. 교육을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라는 교육본질의 내재적 가치에 집중하도록 하는, 교육자치의 이념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임.
▶ 질문1 : 한국의 교육은 폭증하는 관료제도의 요구에 압살당하는 교사-학생이라는 독특한 환경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이번 고교학점제도 고교학점제를 학교현장에 매개해야할 최종적인 담당자인 교사들이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사들은 피동적으로 고교학점제를 형해화하여 미봉의 상태로 학교현장에 도입할 것이고, 그 결과로서 고교학점제는 학교현장의 혼란과 불안정성만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뻔한 반복되는 패턴의 원인은 압도적인 관료제도주도성이 아닌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2. 학생 개개인에 맞춤한 교육과정의 제공이라는 개별화 원리에 담긴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라는 문제
1)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과정이라는 신화 : 교육을 개인들이 재화를 내고 소비하는 상품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전면화 되면서, 개별화된 교육과정이 궁극적 선으로 등장하게 됨. 교육서비스제공자로서 학교와 교사, 그리고 서비스 소비자로서 학생과 학부모 모델은, 교사-학생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킴. 교육의 전통적 개념인 틀(형식)을 주는 존재로서 교사, 그런 틀(형식)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학생이라는 모델이 붕괴됨.
특히 서열화된 대학체제를 통한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는 사회적 힘이 압도적인 교육환경에서 교사는 입시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도록 강요받고 있음. 이런 환경에서는 교과지식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형식도야 요구는 완전히 휘발되어 사라져 버림.
결과적으로, 학교와 교사의 기능이 사회적 지위배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하느냐에 대한 평가로 완전하게 대체됨. 학교와 교육이 소멸하고 입시(취업, 진로)컨설팅과 같은 기능이 핵심적인 교육의 기능으로 부각되는 현실이 탄생함. 조상식(동국대, 교육학)은 이런 변화는 결과적으로 체제의 통치성을 일정하게 관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봄. 예를 들어 최근의 공정성 논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쟁의 승리자들이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경쟁 이익의 극대화에 대한 주장을 무제한적으로 펼치고, 경쟁의 패배자들은 어떤 주장의 개연성도 폐쇄당한 채로 정치적 금치산자로 자발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상태에 동의하는 행위 양식을 보임.
결국 개별화된 교육과정이란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학력지위경쟁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통로이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강화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고 보아야 함.
2) 교육과정 개편은 계급투쟁의 장 : 신교육사회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육과정개편은 사회적 계급투쟁의 장일 수밖에 없음. 새로운 고교학점제는 외고-과고-자사고와 같은 엘리트학교들의, 강남지역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지식의 우세를 더욱 강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기득권 10% 계급들의 지위배분에서의 우위를 확고하게 해줄 것이 명확함. 서울-중산층주류계급 문화가 아닌 전남과 같이 지방의 주변적 문화는 교육과정지식에서 더욱 소외되고, 학교의 교육실천 관행(schooling habitus)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배제되는 효과를 강화시킬 것임.
지식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가장 가치중립적이라는 수학에서 조차 부정되는 것이, 지식에 대한 현대의 통찰이 내린 결론임. 예를 들어 독일의 교육은 가치중립적인 지식의 강제가 아니라, 가치선택에 대한 교육임. 지식이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것이 지식으로 채택된다는 주장은, 사회의 주류계급이 지식선택의 주도권을 확보한 상황을 정당화시키는 신화에 불과함.
예를 들어, 지식을 구성하는데 사용되는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주류계급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담지하고 있다는 것이 지식사회학의 결론임. 지식사회학의 이런 결론을 반영한다면, 고교학점제에서 지방에 개설되는 교과-강좌-문화들이 서울 강남 중심의 엘리트학교들에서 개설되는 교과-강좌-문화들에 열등한 것으로 평가될 것은 명약관화함. 더구나 지금처럼 서열화된 서울 중심의 소수대학들이 학력에 따른 지위배분의 힘을 압도적으로 행사하는 상황에서 지방의 학교들이 개설하는 교과-강좌-문화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해야함. 현재와 같은 서열화 된 대학과 후기중등교육이라는 환경에서 보편교육을 깡그리 허무는, 고교학점제는 계급재생산구조로서 교육의 기능을 더욱 강화할 것임.
▶ 질문2 : 고교학점제의 중요한 논리중의 하나는 학생개개인에 맞춤한 교육과정의 제공이라는 개별화의 원리이다. 이런 개별화의 원리란 경쟁결과에 대한 책임귀속을 개인들에게 전가함으로서 교육이 가지는 공적책임을 방기하는 정당화의 논리 아닌가?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은 이런 경향성이 5.31 교육개혁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하면서, 크게 보면 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의 완결판이라고 해석한다. 김영민(한신대)은 학교교육의 붕괴 원인이 ‘교육서비스소비자’로서 ‘학생-학부형’이라는 모델이 학교교육에 적용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대안으로서 공부라는 틀(형식)을 제공하는 교사 – 그런 틀(형식)을 통하여 성장하면서, 그런 틀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이라는, 전통적 교육 모델의 복원을 제안한다.
어찌됐든 이런저런 개별화의 원리에 기반한 교육개혁(악) 정책들은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학교교육의 결과에 반영되도록 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는 뻔히 아는 바와 같이 서울(강남)---->지방으로의 수직계열화된 지위배분이다. 따라서 고교학점제의 도입에 관한 논의에서 5.31 교육개혁조치 이후 개별화의 원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질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5.31 교육개혁 조치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는 불가피하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된 5.31 교육개혁 조치는 거의 시종일관하게 30년 이상 동안 한국교육정책의 근간으로 작동하였다. 만일 새로운 교육개혁에 관한 방향설정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5.31 교육개혁에 대한 철저한 평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3.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선택함에 따른 의사소통방식 또는 행위양식의 변화에 대한 문제(인터넷이라는 매체의 도입이 야기한 사고-행위 양식의 변화)
1)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정보가 가지는 특징
인터넷이 본격적인 소통의 매체로 등장하던 세기말(1990년대)에 그리고 정보화 사회가 미래사회라고 누구나 한마디씩 거들던 세기말에, 거의 모두는 정보의 무한정하고 평등한 접근의 용이성으로 인하여 모든 불평등이 사라진다는 식으로, 세계는 온통 장미 빛 낙관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로 확인되는 데는 겨우 한세대(30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좌-우 지평에서 어떤식으로 소비되든, 한병철(독일, 베를린대)의 문화비평은 정보화-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적 기획이 세상을 극우파시즘이나 테러리즘 같은 것들이 서로를 배척하면서도 공존하는 동일성의 폭력적 지옥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SNS의 지배적 소통방식은 ‘좋아요’라는 동일성만을 생산하는, 모든 타자의 이질성이 사라진 균질적 인간들만을 만들어 냈다고 비판한다. 한병철식으로 정보화사회를 정의하면, 정보화 사회란 서로 다른 정보들의 소통의 증가에 기반한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같은 동일한 정보의 반복적 순환으로 인한 세계의 파시즘적 동일화가 본질이라고, 말해야 한다.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화에 대한 비판은 김영민(한신대)에게서도 확인되는데, 그는 정보화사회를 ‘거울사회-나르시즘사회’라고 정의한다. 세계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거울처럼 상호복제하는 양상이 정보화의 정보생산양식이라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정보화 사회의 매체인 핸드폰이 동일한 정보를 무제한적으로 복제하여 순환시키는 거울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주체들은 모두 동일화되고, 그런 주체들은 동일한 자기의 확산을 보면서 나르시즘적 자기도취 속에서 세계에 대한 진정한 소통의 능력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SNS에 올려 진 수많은 셀카 이미지 같은 정보들이 ‘도대체 무슨 이질적 소통을 야기하냐?’는 항의이다.
모든 인터넷 매체에 올려 진 정보들은 기껏해야 자본주의적 욕망에 의하여 동일하게 모방된 복제품들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호수에 비친(다른 사물로 확장된) 자신의 모습에 매혹당하는 나르시스와, 핸드폰이라는 거울에 반사되어 복제되는 자신의 모습에 매혹당하는 현대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김영민의 이런 인터넷 정보기술이 ‘거울사회-나르시즘사회’라는 설정은 최근의 사회적 집단들이 경계선을 따라 단지 몇개의 집단으로 분할되어 있고, 그런 분할은 자기확증편향적 정보의 편식에 의해서 강화되고 있다는 진단과 잘 어울린다.
(김영민의 진술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그의 진술을 반복하자면, 종교적 나르시즘 사회였던 중세를 무너뜨리고 시간으로는 고대와 지리적으로는 대항해를 통하여 이질적 세계와 타자에 대한 접속 열망으로 열렸던 근대가, 다시 자기 폐쇄적인 나르시즘 사회로 퇴행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2) 학교현장의 교사들이 묘사하는 학생들의 모습
‘다섯줄 만 넘어가도 읽기 힘들어하는 아이들(21-05-11, 한겨레24면 정희진의 융합, 재인용)’.
요즘의 아이들이 글로 자기를 표현하고 글을 끈기 있게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직관적 느낌은 보편적이다. 물론 아무런 실증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이렇게 주장하는 짓의 무모함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모든 진실은 직관적 판단에 일정부분 의존한다는 말에 기대서 말하자면, 체험과 몸으로 치열하게 부대끼지 않은 ‘1과 0’의 디지털 알고리즘이라는 형식으로 가공한 정보들에 기댄 요즘 아이들의 ‘문해력’에는 정보가 가져야할 시간이라는 역사적 깊이와 그것으로 계속 다른 지식들과 융합해가는 창출력이 없다. 그저 SNS라는 매체로 제공되는 정보들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파편화되고 사물화된 인간만이 만들어진다. 정성들여 몸으로 시간으로 그리고 삶으로 읽어낸 정보들이 가지는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융합성이 없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에듀테크에 기댄 미래설계가 가능하다는 그리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정보화 사회라는 지난 30년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아무런 성찰적 반성이 없는 무뇌아적인 주장이다.
▶ 질문3 : 고교학점제에 대한 매체론적 질문의 필요성이 간과되고 있음. 특히, 서울강남이나 외고 과고 자사고 등과 같이 직접적인 대면에 기반한 다양한 교과를 개설할 수 없는 지방의 경우,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강좌가 많이 개설될 것임. 그럴 경우 인터넷이라는 비대면 매체에 수용될 수 없는 ‘사회성연습-가치교육-인간관계기술습득-정서적 후원과 지지’ 등이 소거되는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함. 맥루한 식으로 말해서 ‘매체가 메세지’라고 한다면, 온라인으로 상징되는 비대면 강좌의 무분별한 남발은 더욱 파편화된 의사소통방식을 보편화시킬 것임. 또 다른 차원에서는 지역-지방의 경우 인터넷테크놀로지에 포섭되지 않는 가치들이 휘발되어 버린, 온라인수업에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 한다면, 교육 내재적인 고유한 가치의 결핍을 어떻게 보충할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가?
2020. 05. 12.
전 남 교 육 연 구 소 (책임작성자 :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