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자전거여행
완도항에서 제주항으로 가는 10/02일(수요일) 오후 4시 배.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물론 여정이 시작되면 개고생도 함께 출발한다.
배 꽁무니에서 찍혀 나오는 배의 발자국. 마치 눈길을 지우고 가는 것 같은, 육지의 과거를 지우고,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 미래로 떠나는 느낌을 준다. 포말처럼 금방 사라지는 과거, 그리고 넓게 펼쳐진 망망대해의 미래 라는 환영. 환영이라 환상이겠지. 실제로는 과거는 포말이 아니라 단단한 근육이다. 신체의 어딘가에 견고하게 남아있는, 그래서 몸은 그 사람의 역사다.
제주항에 이미 사위가 깜깜해진 한밤에 도착해서, 쎄빠지게 달려서 한림까지 왔다. 한림항에 도착하니 칠흑 같은 오밤중이었다. 그 시간에 한림항 부두에서 그물에 걸린 조기를 털어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 가까이 찍고 싶었으나, 거친 노동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한가롭게 카메라를 들이 대는게 예의가 아닌것 같아서, 멀찍이 숨어서. 그럼에도 이런 장면을 찍을때는 항상 찜찜한 죄스러움의 느낌이 남는다.
한림항 어판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항구식당'. '해물뚝배기탕'이라는데 건데기가 겁나 많았다. 작은 전복이 몇개 있었는데, 같이 동행한 영훈이가 그걸 건질때 마다, 왕건이가 걸렸다고 좋아했다. 이럴때 영훈이는 아이 같이 순수하다.
10월 3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렸다. 뒤에서 바람이 불어 주니, 꼭 날라 다니는 기분이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고, 경치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모든게 둥실 둥실 떠가는 풍선을 탄 기분이었다. 그 중 차귀도 주변의 풍경은 제주도 여행중 가장 멋졌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러번 다녔음에도, 그 전에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매번 차귀도를 거쳐갔지 싶은데, 아마도 날씨가 차귀도를 새롭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차귀도 항에서 모슬포로 향하는 중간에서 찍은 영훈이 사진. 꼭 알카에다 같다. 그래서 알카에다 한국지부 제주에이전트의 작전수행에 관한 말도 안되는 농담을 하면서 ---. ㅋㅋㅋ.
차귀도에서 모슬포 가는 길에 커피를 한잔 하고 싶었다. 아침에 커피 한잔씩 마시는게 어느덧 몸에 새겨진 버릇으로 굳어졌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고 그 많던 제주도 길거리 카페들이 정작 필요할 때는 눈을 부비고 찾아봐도 없었다. 많지는 않겠지만 이 근처에서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가끔은 있는 모양이다. 중간에 무인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이 '무인카페'고, 실제로도 주인이 없다. 방금 내린 따뜻한 커피가 가득한 커피포트가 주방에 즐비하다. 둘이 커피 한잔씩 마시고 사천원을 돈통에 넣었다. 카페안에는 이곳을 다녀간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왜 사람들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할까?
모슬포 항구 '부두식당' 바로 앞 풍경과 부두식당에서 먹은 방어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방어회는 진짜 아무런 맛이 없었다.
중문해수욕장 풍경. 호텔단지가 있는 위쪽에서 밑을 내려다 보면서 찍음. 전지적관점이라는 버드아이즈시선이라,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보는 샷이어서, 풍경이 널찍하고 시원하다.
한발 떨어져서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 내려다 보면서 살면, 편하긴 한데, 그러다 보면 결국 사기꾼이 된다. 진보적 삶이란 모름지기 무식하게 한면만 보면서, 현장에 끼어 들어 부대끼면서, 어거지 부리면서 욱대기를 해야하는 생활 방식이다. 그래도 세상은 눈꼼만큼이라도 변할까 말까다. 이데올로기가 물적 기반을 가진 상황에서, 이데올로기를 바꾼다는건 강제로 현실의 물적 기반을 해체해서 새롭게 물적기반을 짜야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서 언제나 변화는 불편하고 껄끄럽고 불쾌함을 동반한다. 익숙했던 관행을 바꾼다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모든 새로움은 거칠고 투박하다.
전지적 관점은 그런 현장을 멀찍이 떨어져 내려다 보는 시선이라 현장개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세련되고 편안한 입장이다. 그러니 전지적으로 보면 한량이 될 수 밖에 없고, 한량이 되면 세속의 분진을 멀리할 수 밖에 없고, 세속에 멀찍이 떨어져서 편안하게 살려면 사기치는 기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고, 전지적 관점이 편안하고 좋은 나는 그러니 결국 사기꾼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저작권 시비를 걸겠군? ㅋㅋ.
서귀포에서 표선으로 가는길에 있는 강정마을 풍경. 가녀린 수녀님들 두 분이 산만한 공사장 덤프트럭을 막고있다. 한가롭게 자전거 타고 놀러 다니는게 미안해서 몰래 사진만 찍고 얼른 꽁무니를 뺐다.
표선에서 성산포로 가는 길 중간에 있던 커피포장마차. 전형적인 제주 아줌마 폼세의 주인과 커피집이 잘 어울렸다. 커피도 맛있고 좋았다.
제주시 근처에 거의 도착했다. 어딘지 지명이 생각나지 않는데, 이곳만 지나면 제주시가 나온다. 아마도 제주시 근처에서 제일 풍광이 뛰어난 곳이지 싶다.
제주 동문시장 막걸리집. 저녁 여섯시 밴데 오후 2시쯤 제주시에 들어왔다. 할 수 없이 막걸리집에서 시간을 때웠다. 대낮부터 술에 쩔은 상태로 이번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놈의 술을 어찌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