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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한창훈)
디오니스트
2011. 8. 3. 11:51
방안에 책을 잔뜩 늘어 놓고, 이것 저것 뒤적인다.
너무 딱딱하거나 , 너무 무겁다.
그러다가 문득 집어든게 한창훈이 쓴 이 책인데, 너무너무 재미있다.
혼자 밤새도록 끼득거리다가, 안타까워서 한숨 짓다가, 문득 바다의 맛이 그리워서 미역국도 끓여 먹었다.
한마디로 한창훈의 낚시에 제대로 코를 꿰였다.
고기가 낚시 바늘을 물면 그걸 낚아채는게 후킹이라고 하는데, 한창훈에게 제대로 후킹당했다.
후킹당한 대목들을 옮겨놓는다.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제대로 후킹질 할 수 있다.
키스는 갈치 비늘을 주고 받는 행위의 또 다른 이름이다. p.19.
제사 때만 되면 마누라한테 한소리 들은 할아버지가 바닷속에서 낑낑대며 삼치 몰아주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나는 죄송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p.30.
구두가게 사장님은 슬리퍼 신는다더니. p.33
내가 아는 어떤 사내는 쇠고기와 모자반이 준비되면 일부러 소주를 마신다. 밤새 퍼마신 다음 날 시뻘건 눈으로 어, 어허, 소리를 내며 퍼먹는다. 먹는 행위가 전투 같기도하고 의약품 투여 같기도 하고 높은 강도의 몰입 같기도 하다.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냐고 물어보면 "이것은 보대끼는 맛으로 먹어"라고 한다. 속이 쓰리고 괴로울수록 더 맛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p.43.
잡긴 잡았는데 잡힌 놈마다 용왕아들이라고 빌어서 놔주었단다. 허참, 용왕은 힘도 좋지. p.57.
문어가 대표적인 보양식이긴 하지만 그런 마음을 얻는다면 어떤 힘인들 안 나올까.
그때부터 우리는 힘을 쓰지 않았다. 왜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느냐고 사장이 채근하면 아들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앞대가리를 빼먹어서 전체적인 맥락이 모호하다). p.66.
고등학교 3년 내내 장찬리 이장이 되고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면장으로 목표치를 슬그머니 올려 놓기도 했다. ---. 그나저나 원봉이는 이원면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씩씩하기는 하지만 워낙 소박한 성품이니 경쟁우선의 요즘 세태와는 어울리지 못했을 것 같다. 이장이 되었다면---. p.75-85.
심지어 안동 사는 안상학 시인은 간고등어가 안동댐에서 난다고 한다. 임하댐에서는 아예 간을 한 채 양식도 한단다. p.78.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물칸 속에서 어색하게 헤엄을 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둘이 만날 확률을 생각해보았다.(가슴이 뻐근해지는 대목이다). p.111.
호수는 가만히 있는데 어디선가 돌이 날아오면, 파문은 돌보다는 호수한테 생기지요? .p.129.
섬의 늙은 아낙은 자신의 피부를 쓸어보며 한숨 자주 쉰다. 무슨 벌을 받아 이 먼 섬에 태어났는가, 한탄하다가 자신이 낳은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p. 228.
깊은 무료함 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풍성함이 찾아 온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일은 계속해볼 만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는데 생각이 너무 길어 나중에 먹으려고 둔 큰 소라는 그만 까맣게 타고 말았다.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