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진화론
1.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의문들.
조경란의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고있다.
우연히 마주친 한 대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국의 사회진화론은 변법자강 운동이 실패하면서, 일정한 성찰의 요구에 봉착하였다.
반면에 일본의 사회진화론은 메이지유신에 의한 사회진화론적 제도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곧바로 제국주의로 직진하였다.>
그렇다면, 중국은 사회진화론을 성찰적으로 소화하였고, 일본은 성공의 저주에 빠져버렸단 말인가?
메이지유신의 성공이 일본으로 하여금 사회진화론의 폐해를 성찰해 볼 기회를 박탈했단 말인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어떻게든 복구하려는 현재의 일본도, 그렇다면 성공적인 사회진화론의 저주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인가?
구한말 조선은 사회진화론을 어떻게 소화했나?
2. 사회진화론의 이중성
동아시아의 역사관은 복고적이다.
이상사회의 전형으로서 과거인 '요순 시대'라는 태평성대가 있다.
현재는 그런 과거에 비추어서 순화되어야 한다.
준거점이 항상 과거로 주어져 있다.
사회는 점점 진화발전하다는, 사회진화론은 이런 과거 회괴적 역사관을 전복하는 효과가 있다.
서세동점의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고루한 왕조체제를 전복할 필요가 있었다.
서양과 맞서기 위해서는 근대적 서양과 같은 효과적인 국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문제는 이런 사회진화론을 수용하면,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진화론이 자국의 전통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건설의 논리를 제공하는 순기능이 있다면, 다른 배면에는 서구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로 쓰일수도 있다.
동아시아 근대화 기획의 국면에서, 서구열강은 모방의 대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극복의 대상으로 주어졌다.
결국, 사회진화론도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수용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복의 대상이어야 했다.
이런 딜레마적 이중성의 국면을 당대의 독립운동가 지식인들이 정확하게 인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결과가 많은 독립운동가 지식인들의 변절이다.
이광수의 변절이라는 딜레마적 풍경도 아마 이런 맥락속에서 설명해야 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조선을 부정해서 새로운 근대적 조선을 정립하는데 실패한 그는, 우월한 타자로서 사회적으로 더욱 진화한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를 너무도 쉽게 수용할 수 밖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한것이 아닐까?
이광수가 변절하지 않을 수 있는 좁고 험난한 길은 아마도, 일본과 조선의 동시적 부정이라는 협소한,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험로였을 것이다.
혁신해야할 과거의 자신과, 혁신의 준거점으로 선진적인 새로운 타자를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설정해야 하는, 분열적 상황을 다루는데 그는 슬프게도 실패했다.
근데,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누구에게서 그런 성공적인 사례를 볼 수 있을까?
동학교도이자 선비였던 마지막까지 한반도 분단만은 저지하고자 했던 김구?
이등박문을 암살했지만, 그리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천황의 존재를 긍정했던 안중근?
구한말 재벌 가문의 전재산을 처분하고 만주에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관학교를 세웠던, 최종적으로는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가 되었던 이회영?
꼿꼿한 선비로 시작해서 고루한 민족주의를 거쳐 무정부주의자 아나키스트로 까지 나아갔던 신채호? 그래도 신채호가 이중적 모순에 대처해야 했던 시대적 문제설정에 가장 가깝게 가지 않았을까?
아귀에 딱 맞는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쫌 갈쳐줘라.
https://dspace.inha.ac.kr/bitstream/10505/20449/1/17-05.pdf
cf) 일치일란(一治一亂) : 순환론적 세계관(음양론적 세계관). / 복고적세계관 : 현재의 준거점으로서 과거 요순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