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영화보기
파면과 해임에 붙여!
디오니스트
2008. 12. 14. 16:28
과거로 불려가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있었다.
다 잊었는데, 단 하나 기억이 선명한게 있다.
극중 잘나가는 영화감독의 작품이 모두 할리우드 영화의 짜집기라는 폭로다.
감독 자신도 모르는 걸 누군가가 찝어낸다.
조목조목, 이건 어느 영화 어느 장면을 모방한게요,라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신뢰하던 감독은 결국 무너진다.
동시에, 나도 영화를 보고 넉나간 듯한 정서에 휩싸였다.
우리는 결국 할리우드의 자식들이다.
제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속에서 분주할 뿐이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할리우드의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스크린이다.
족히 십수년전의 영화다.
뒤돌아 보면, 한국영화가 엄혹한 군부-파시즘 체제의 족쇄에서 풀리면서 나온 영화다.
검열체제에서는 창작이라는게 불가능하다.
제도로서 검열은 최종적으로 제작자 자신을 검열자로 만든다.
작품을 창작하는게 아니고, 검열을 도구로 제작한다.
검열이란 작품을 만들어내는 주형과 같다.
군부독재 정권이 사라지면서 점차로 작품을 찍어내는 주형인 검열이 사라졌다.
제작자들이 비로소 자기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인가를 질문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다.
그게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다.
최근에 한국의 사회상황이 20년 이상 과거로 퇴행했다.
교육현장만을 따로 떼어 놓으면 그 보다 훨씬 전으로 소급된 느낌이다.
황당하게, 89년에도 수 많은 아이들이 정들었던 자신들의 선생님들과 헤어져야 했다.
쫒겨나는 선생 입장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싸우자니 아이들이 개입되고, 물러서자니 분통이 터졌다.
나는 아이들을 자극하는게 싫었다.
출근투쟁을 하라는데, 귀찮기도하고, 악다구니 쓰는 상황이 벌어지면 처량해질 것 같았다.
그날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학교를 떠났다.
날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장마철이었다.
아마도, 그 보다도 전에는 해마다 전국일제고사 시험감독을 했으리라.
이런 과거소급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갑자기 존재의 조건이 바뀌니 당연히 내가 낮설어진다.
내가 누구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20년 전에는 자유를 쟁취하면서 내가 누군인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오늘은 과거로 소급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하나가 성장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라면,
다른 하나는 퇴행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서 전자가 고통스럽지만 생명력이 약동하는 정조라면,
후자는 퇴행적 자폐로 빠지게하는 자학적 정조를 만든다.
어디선가 이걸 정말로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는 두번 되풀이 된다고 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현재를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어 웃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역사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현실을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 그런 능력이 있나?
내년 봄 쯤에는 사람들이 현실을 웃어 줄 수 있을까?
심각하지 않은 내가 좀 웃긴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가 있었다.
다 잊었는데, 단 하나 기억이 선명한게 있다.
극중 잘나가는 영화감독의 작품이 모두 할리우드 영화의 짜집기라는 폭로다.
감독 자신도 모르는 걸 누군가가 찝어낸다.
조목조목, 이건 어느 영화 어느 장면을 모방한게요,라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신뢰하던 감독은 결국 무너진다.
동시에, 나도 영화를 보고 넉나간 듯한 정서에 휩싸였다.
우리는 결국 할리우드의 자식들이다.
제아무리 날고 뛰어봐야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속에서 분주할 뿐이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할리우드의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스크린이다.
족히 십수년전의 영화다.
뒤돌아 보면, 한국영화가 엄혹한 군부-파시즘 체제의 족쇄에서 풀리면서 나온 영화다.
검열체제에서는 창작이라는게 불가능하다.
제도로서 검열은 최종적으로 제작자 자신을 검열자로 만든다.
작품을 창작하는게 아니고, 검열을 도구로 제작한다.
검열이란 작품을 만들어내는 주형과 같다.
군부독재 정권이 사라지면서 점차로 작품을 찍어내는 주형인 검열이 사라졌다.
제작자들이 비로소 자기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인가를 질문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었을 거다.
그게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다.
최근에 한국의 사회상황이 20년 이상 과거로 퇴행했다.
교육현장만을 따로 떼어 놓으면 그 보다 훨씬 전으로 소급된 느낌이다.
황당하게, 89년에도 수 많은 아이들이 정들었던 자신들의 선생님들과 헤어져야 했다.
쫒겨나는 선생 입장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싸우자니 아이들이 개입되고, 물러서자니 분통이 터졌다.
나는 아이들을 자극하는게 싫었다.
출근투쟁을 하라는데, 귀찮기도하고, 악다구니 쓰는 상황이 벌어지면 처량해질 것 같았다.
그날로 주섬주섬 짐을 챙겨 학교를 떠났다.
날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장마철이었다.
아마도, 그 보다도 전에는 해마다 전국일제고사 시험감독을 했으리라.
이런 과거소급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갑자기 존재의 조건이 바뀌니 당연히 내가 낮설어진다.
내가 누구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20년 전에는 자유를 쟁취하면서 내가 누군인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오늘은 과거로 소급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하나가 성장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라면,
다른 하나는 퇴행하면서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서 전자가 고통스럽지만 생명력이 약동하는 정조라면,
후자는 퇴행적 자폐로 빠지게하는 자학적 정조를 만든다.
어디선가 이걸 정말로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는 두번 되풀이 된다고 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현재를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어 웃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어처구니 없는 역사는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현실을 웃기는 희극으로 만들 그런 능력이 있나?
내년 봄 쯤에는 사람들이 현실을 웃어 줄 수 있을까?
심각하지 않은 내가 좀 웃긴다.